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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스템 수익인가? 이 글을 보고계신 대부분의 독자들은 주업이 있으면서 부가적인 수익을 올려보려는 분이거나, 한량한 생활을 보다 더 오래,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려는 자유인일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은 분들이라는 것은 분명하지요. 주업을 하면서 소득을 늘려보려는 분들의 경우에는 현재 하고 있는 일들로 인해서, 부업을 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고, 설사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지쳐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입니다. 제 전공은 비뇨의학(Urology)입니다. 생소하시겠지만 소변의 생성과 배출에 관련된 질환을 다루는 과입니다. 수술은 하고 싶은데, 외과나 흉부외과, 신경외과처럼 병원에만 붙잡혀 있어야.. 2020. 11. 1.
전공의 일기. 5-25화 유착 수술은 험난했다. 전립선 암으로 이미 한차례 수술을 시행했었고, 잔여 암으로 인해 방사선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골반강 내의 장기들이 구분이 지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착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손가락을 이용하여 주변의 장기와 박리를 진행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경험과 감으로 장기를 박리해 나아가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예상보다 험난한 상황에 의료진은 예민해져 있었다. "석션(Suction, 음압을 이용하여 체액을 흡인하는 기구) 좀 똑바로 해!" "네 알겠습니다." "스무스로 여기 잡아" "네 교수님" 경험많은 교수님의 리드로 조직을 절제하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을까? 환자의 골반강에서 방광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방광에 자리잡은 육종(S.. 2020. 10. 25.
전공의 일기. 5-24화 개복 수술대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많은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비뇨의학과에서 시행하는 수술 중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수술이기에 할아버지의 안전을 위한 준비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했다.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마취기계의 소리가 차가운 수술방의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마취과 의사는 할어버지의 좌측 경정맥에 중심정맥관을 삽입하였고, 우측 팔의 요골동맥에 동맥압 측정을 위한 A-line(Arterior line)을 잡았다. 긴 수술을 견디기 위한 안전장치들이 준비되었고, 나는 할아버지의 옆에 진갈색 소독약을 들고 섰다. 조명에 의해 창백하리만큼 하얗게 비춰지는 할아버지의 복부를 진갈색 소독약으로 섬세히 닦아냈다. "오늘 절개는 long-mid line(정중절개)으로 할겁니다. 명치부터 회음.. 2020. 10. 21.
전공의 일기. 하늘파란 강릉에서 글을 통해 제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자 작성하기 시작한 전공의 일기. 하늘파란 강릉에서가 출간되었습니다. 115페이지의 짧은 에세이지만, 원고 작성부터, 퇴고, 표지 디자인까지 모두 제 손으로 마무리한 책입니다. 첫 번째 출간이기에 부끄러운 점이 많지만, 준비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출간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이책 구매하기] [전자책 구매하기] 2020. 10. 21.
해미가 [강릉 맛집-해산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강릉의 동료들과 회식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매 3개월마다 만나는 동료이지만, 매번 한달의 짧다면 짧은 파견을 마무리 할 때 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이번 파견이 마무리 되는 날 우리는 조촐한 저녁식사로 아쉬움을 달랬다. 정통 횟집이라기보다는 셋트 메뉴로 구성된 해산물을 위주로 술 한잔 하기 좋은 곳이다. 가게는 작지만, 내실이 튼튼한 집으로 소개받았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 식사시간은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주차장을 비롯해서 식당 내부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시끄럽게 이어지는 대화 소리에는 즐거움이 배어있었고, 활기차게 우리를 맞이하는 종업원의 얼굴은 싫은 내색이 없이 깨끗했다. 종업원은 홀에 비해 비교적 한적한 내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2020. 10. 19.
전공의 일기. 5-23화 6시간 "오늘이 수술 날입니다. 환자분께서 보호자분들께 설명을 해드리길 원하셔서 이렇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버지 수술은 잘되겠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역시 환자분께서 무사히 수술을 받으시고 건강하게 퇴원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도통 말씀을 안 하셔서 그러는데...... 지금 저희 아버지 상태가 정확히 어떤가요?" "네? 환자분께서 말씀을 안하셨던가요?" "아버지께서는 별거 아니라고, 걱정 말라고만 하셨지 지금 상태에 대해서는 말씀을 해 주신 게 없습니다. 저희도 답답했지만 서로 생계가 바쁘다 보니 신경을 쓰질 못했습니다." "환자분께서는 아드님과의 여행을 다녀오고 현재 상태를 분명히 말씀드렸다고 하시던데요? 환자분의 .. 2020. 10. 19.
숨은 맛집, 흑진주 [강릉 맛집-중화요리] 강릉에 파견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병원 주변에 이렇다 할 음식점이 없다. 병원 정문을 나서 길을 건너면 편의점 몇 곳과 약국들이 전부이다. 그래서 슬프다. 병원 식당에서 제공하는 영양가 풍부한 음식도 삼일이면 지루해지는데, 잠깐 시간 내어 음식점에 가려고 하면, 족히 20분은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병원을 감싸안는 푸릇한 산들이 내뱉는 깨끗한 공기만으로는 도무지 배가 차지 않는다. 병원 밥 먹기 싫어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를 나섰다. 등산하듯 정문까지 열심히 걸어가 횡단보도에 섰다. 마주 보이는 편의점 건물을 스윽 살펴보고는 편의점 2층에 위치한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향했다. 이름이 참 묘하다. [흑진주] 몇 번 가보았던 곳이지만, 볼 때마다 이름 참 잘 지었다 하고 생각했다. 병원 사람.. 2020. 10. 14.
와인, 그냥 마시면 안될까? 나는 특별한 취미가 없었다. 학교에 다니던 시기에는 유도나 야구 같은 몸으로 하는 활동들을 즐겼지만,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시간도 없고, 몸은 힘들어 취미를 가져 볼 꿈 조차 꾸지 못했다. 취미라는 것이 관심이 있어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이제는 나의 일상이 견뎌 내야 할 짐이 되었다.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정점을 모르고 늘어만 가는 체중, 딱히 일상의 무료함을 견뎌낼 방법을 찾지 못해, 늘어가는 담배. 점점 인생이 피폐해져 감을 느꼈다. '술은 잘 못하는데 퇴근해서 딱 한잔, 맛있는 와인이 먹고싶다.' 나는 술에는 잼병이다. 덩치는 커다랗고, 생긴 건 우락부락한데 이상하게 술에는 약하다. 말술로 마실 것 같이.. 2020. 10. 14.
전공의 일기. 5-22화 수술날 아침. 어김없이 날이 밝았고, 드디어 수술이 예정된 날 아침이 되었다. 할아버지를 괴롭혔던 방광의 육종이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유착으로 인해 쉽지 않은 수술이 될 것임을 알고 있던 터라, 아침부터 모두들 긴장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밤새 잠을 못 이루셨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 좀 주무셨어요? 표정을 보니까 하나도 못 주무신것 같은데요?" "에이 이선생. 내가 암수술 한 두번 받아보나? 잘 잤어 아주. 컨디션 최고야 최고" "딱 보니까 피곤한 얼굴인데요 뭐. 하나도 못주무신것 같구먼......" "아니야 잘 잤어. 이따가 아들놈 들하고, 마누라하고 병원에 온다는데 이선생님 만나서 얘기 좀 해줄 수 있을까?" "네, 당연히 해야죠. 제가 어떤 얘기를 해드리면 될까요?" "수술 별거 아니라.. 2020. 10. 14.
전공의 일기. 5-21 후회 수술을 결심하고 난 뒤 진행되었던 검사 결과가 취합되었다.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의 전신상태가 수술을 견디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심장 초음파는 할아버지의 심기능이 충분히 안정적임을 보여주었고, 폐 기능 검사 또한, 수술을 진행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할아버지의 방광에 자리 잡고 있던 육종의 크기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고, 간에서 새롭게 생겨난 병변들이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조직검사를 시행하기에는 그 크기가 작아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전이를 확신할만한 근거는 뚜렷이 없었지만, 정황상 육종의 간 전이를 의심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수술을 위한 준비가 끝났고, 수술이 내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이선생 왔어?" "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요즘 걱정이 많이 .. 2020. 10. 13.
배너 2020. 10. 12.
전공의 일기. 5-20 우려 본격적인 수술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할아버지의 암덩이가 지난 3개월간 얼마나 얌전히 있었을지 평가를 해야 했다. CT를 시행하여 전이 여부를 평가했고, 뒤 이어 신장기능은 얼마나 보존된 상태인지 핵의학 검사가 이어졌다. 마취를 위한 심장기능 평가와 호흡기 검사가 함께 이루어졌고, 검사 결과들이 하나씩 취합되었다. 쉼 없이 진행되는 검사일정에서 할아버지가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할아버지, 검사는 잘 받으셨어요?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보이시네요." "이선생 왔어? 하루 종일 검사실 불려 다니면서 온갖 검사 다 한다고 지쳤어 아주." "고생하셨어요. 수술 준비는 이제 얼추 마무리된 것 같아요. 아직 수술 일정은 안 잡힌 것 같은데, 교수님이 혹시 날짜를 지정해 주시던가요?" "다음 주쯤 검사 결과보고 날짜.. 202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