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21) 썸네일형 리스트형 전공의 일기. 4-21화. "여보! 여보! 눈떠봐! 여보 눈 떠봐 제발! 여보!" 보호자는 환의가 풀어헤쳐진 환자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통곡했다.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슬프게 울며 환자의 가슴팍에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인턴이 함께 흐느꼈다. 환자의 심박은 여전히 뛰지 않고 있었다. 인공호흡기는 이제는 의미없어진 들숨, 날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보호자분, 심폐소생술 진행중입니다. 환자분의 심장이 기능을 상실했고, 현재 가슴 압박을 통해서만 혈액을 순환 시킬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사망상태입니다. 더 진행할까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이 자리에서 환자의 담당의로서 내가 전해야 할 말이었다. "그만해요. 그만 괴롭히고 내버려 둬요. 그만할래요!" 보호자는 흐느끼며 힘겹게 중단을 요청했다. .. 전공의 일기. 4-20화 "보호자 분 병원으로 오셔야겠습니다. 환자분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예? 어떻게 안좋아요? 이제 끝인가요? 얼마나 버틸 수 있나요?" 환자와 이별하기 하루 전 저녁이었다. 승압제에 대한 환자의 반응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고, 혈압은 강릉 앞바다 파도처럼 너울지게 그려지고 있었다. 이미 장시간에 걸친 승압제 사용으로 환자의 양측 손가락과 발가락의 괴사는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동맥혈 가스분석 결과도 환자가 더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기말 양압환기 압력을 높여가며, 폐포에서 폐를 지나는 동맥으로 산소를 우겨넣고 있는 상황이지만, 환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며, 심박 수는 거칠게 상승해 나아갔다. "지금 출발하시면 얼마나 걸리실까요?" "한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 전공의 일기. 4-19화 환자의 회복은 더뎠다. 활력징후는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승압제의 사용이 없이는 현재의 혈압을 유지하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조금씩 승압제의 용량을 줄이려 시도를 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환자의 폐를 대신하고 있던 인공호흡기 역시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후 발생한 폐렴과 무기폐가 그 원인이었다. 환자의 폐는 더욱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 덧 2주가 흘러있었다. 매일 같이 환자의 곁을 지키던 보호자도, 생계와 관련된 일들을 중단 할 수 없어 병원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비뇨의학과 전공의 입니다.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CSICU(순환기 외과계 중환자실), 8번 자리에 계신 저희.. 전공의 일기. 4-18화 오늘도 나는 환자의 옆에 섰다. 여전히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고, 환자는 진정제에 취해 있었다. 승압제를 고용량으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혈압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고, 정규 투석대신 지속적 신대체요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것은 창밖의 날씨였다. 비가 온 뒤 햇볕이 따쓰하게 중환자실로 들이치고 있었다. 충분한 수혈 덕분인지, 하얗게 핏기 없었던 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어제 특별한 사항은 없었나요? 차트상으로는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던데요?" "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고, 오늘 오전에 CRRT(지속적 신대체요법) 시행하면서 잠깐 BP drop(혈압하강) 있었던 것 말고는 혈압도 안정적입니다." "6a lab(오전 6시 혈액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ABGA(동맥혈가스분석)는 .. 전공의 일기. 4-17화 중환자실은 여전히 기계장치가 내는 뾰족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울려대는 기계음으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앞장서 환자가 누워있는 창가쪽 8번 자리로 이동했다. 오전임에도 흐린 날씨 때문인지 창가쪽 자리도 어두웠다. 새하얀 환자용 이불을 덮고 인공호흡기를 물고있는 환자의 침대 앞에 섰다. "오늘 오전 lab(혈액검사) 결과 K+(포타슘) 7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신장내과에 바로 연락해서 오전 중으로 투석여부 결정하겠습니다. cardiac(심장 효소검사 및 심전도)은 다행히 큰 문제는 없습니다." "JP는 얼마나 나왔다고? 우상방 100cc, 우하방 40cc, 좌하방 40cc 입니다. 색은 bloody 합니다." "마취과에서는 sedation(진정마취)언제까지 하라고 얘기가 있었나?".. 전공의 일기. 4-16화 폭풍 같은 새벽이 지나 새로운 아침이 시작됐다. 날은 흐렸고, 내 마음을 대변하듯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짙은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전 회진을 준비했다. 환자가 좋지 않은 날은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출혈과 싸움을 벌였던 환자의 병실에 들어섰다. 수술 후, 하루정도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관찰한 뒤 일반 병실로 옮기기로 한 상황이었기에 환자의 자리는 아직 비워두지 않고 있었다. 수술 후 환자를 맞이하기 위해 새롭게 깔아 둔 시트가 새하얗게 그리고 주름 한 점 없이 깔려있었고, 환자의 회복을 돕기 위해 보호자가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식품들이 사물함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 환자의 침대 앞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때, 병실의 담당 간호사가 말을 건넸다. ".. 전공의 일기. 4-15화 "JP 주세요. 양 쪽으로 하나 씩 더 넣을게요" 무거운 마음으로, 대바늘이 연결되어있는 JP catheter를 받아들었다. 복강 안에서부터 피부를 향해 대바늘을 통과시키고 고정하면 된다. 양쪽으로 하나씩 넣어 우측 하복부에 tip 위치하도록 고정했다. 열었던 복부를 복막, 근막, 피하지방층, 피부 순서로 닫아주었다. 수술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이제는 환자 스스로 회복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Intu(기관 삽관용 튜브)는 안빼고 나갈게요, 중환자실에 Vent(인공호흡기) 준비해달라고 연락하세요." 마취과 교수님은 환자의 마취를 위해 사용되었던 기관내 삽관튜브를 제거하지 않고 퇴실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대량출혈이 있었던 상황이고, 마취가 깨는 과정에서 환자가 몸부림을 친다면 애써 지혈.. 전공의 일기. 4-14화 [딸깍 딸깍 딸깍, 툭툭툭툭] 환자의 복부를 움켜쥐고 있던 스테플러(봉합용)와 나일론 매듭을 풀었다. 심하게 팽창된 복부로 인해 칼이 살짝 닿기만 해도, 봉합용 나일론은 쉽게 끊어졌다. 피부의 봉합사들을 모두 제거하고 난 뒤, 근막이 드러났다. 수술 후 탈장을 방지하기 위해 단단하게 봉합하기 때문에 쉽게 잘라내기 어려웠다. 시간이 걸려, 근막이 다시 열렸고, 장을 감싸고 있는 복막이 드러났다. 복막을 절개해 나갔다. "석션 준비해. 양쪽에서 둘 다 석션해" 교수님의 지시가 있었고, 나와 당직 전공의는 환자의 양쪽 편에 서서 석션을 준비하였다. 복막의 2/3 이 절개되어 갈 때쯤, 시뻘건 피 덩어리가 배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복강 내 출혈이었다. 환자의 복강을 가득 채우고 있던 혈종은 그 양이 3L가 넘.. 이전 1 2 3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