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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7화

by ASLAN_URO 2020. 8. 3.

중환자실은 여전히 기계장치가 내는 뾰족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울려대는 기계음으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앞장서 환자가 누워있는 창가쪽 8번 자리로 이동했다. 오전임에도 흐린 날씨 때문인지 창가쪽 자리도 어두웠다. 새하얀 환자용 이불을 덮고 인공호흡기를 물고있는 환자의 침대 앞에 섰다.

"오늘 오전 lab(혈액검사) 결과 K+(포타슘) 7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신장내과에 바로 연락해서 오전 중으로 투석여부 결정하겠습니다. cardiac(심장 효소검사 및 심전도)은 다행히 큰 문제는 없습니다."

"JP는 얼마나 나왔다고? 우상방 100cc, 우하방 40cc, 좌하방 40cc 입니다. 색은 bloody 합니다."

"마취과에서는 sedation(진정마취)언제까지 하라고 얘기가 있었나?"

"아닙니다. 오늘 마취과 교수님과 상의해보겠습니다. 우선 Vent(인공호흡기 치료) care에 대해 PLM(호흡기내과) 협의진료 의뢰해 두겠습니다."

"보호자에게는 못 깨어날 수 있다는 설명을 반드시 하도록 해. Vent weaning(인공호흡기 제거) 조차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네 교수님. 보호자분은 출근해야해서 오전에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유선으로 환자상태 설명드렸습니다" 

"그렇게 해. 오후에도 협의진료 의뢰된 결과 확인하고 다시 계획을 세워보자"

"네 교수님 알겠습니다"

오전 회진이 끝났다. 환자는 여전히 잠들어있었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가느다란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환자의 오른쪽에서서 비가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살아야 할텐데......'

그날 오후 보호자가 면담을 요청해왔다. 신발 뒷축을 구겨신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보호자는 한참을 울었는지 새빨갛게 부은 눈으로 나를 마주했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되는거에요? 살 수 있는거죠? 괜찮은 건가요?"

"아직은 급성기 입니다.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 저도 답답합니다. 현재 환자 분은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이지만, 마취제를 지속으로 투여해서 그런것이니 일단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계셔요.  제일 긍정적인 것은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 까지 환자의 의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호흡이 안정되고, 출혈이 없어보이면, 그때가서는 마취제를 끊고, 환자분이 자발적으로 호흡을 하시는 지 살펴볼 계획입니다."

"우리 애기아빠 불쌍해서 어떻게해요. 제발 부탁드려요. 살려주세요."

보호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나는 보호자를 일으켜 세웠다. 새빨갛게 변한 흰자위 앞으로,  고여있는 눈물에 내가 비쳤다. 

'내가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거짓이 아니었다. 나를 옭죄어오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법적 송사에 휘둘릴 까 두려운 게 아니었다. 내가 환자를 살리지 못했을 때,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죄책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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