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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8화

by ASLAN_URO 2020. 8. 5.

오늘도 나는 환자의 옆에 섰다. 여전히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고, 환자는 진정제에 취해 있었다. 승압제를 고용량으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혈압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고, 정규 투석대신 지속적 신대체요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것은 창밖의 날씨였다. 비가 온 뒤 햇볕이 따쓰하게 중환자실로 들이치고 있었다. 충분한 수혈 덕분인지, 하얗게 핏기 없었던 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어제 특별한 사항은 없었나요? 차트상으로는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던데요?"

"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고, 오늘 오전에 CRRT(지속적 신대체요법) 시행하면서 잠깐 BP drop(혈압하강) 있었던 것 말고는 혈압도 안정적입니다."

"6a lab(오전 6시 혈액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ABGA(동맥혈가스분석)는 나왔죠?"

"네, 오전에 ICU 담당 내과 선생님이 Vent(인공호흡기) 조절하고 가셨어요."

"Weaning(인공호흡기제거)에 대해서는 특별한 얘기는 없었구요?"

"네, 직접 연락해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환자를 덮고 있는 새하얀 이불을 걷어냈다. 환자의 수술부위를 확인하고, 승압제 사용에 따른 말초의 관류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환자의 복부를 길게 가로지르는 상처는 나이론 봉합사와 봉합용 스테이플러로 촘촘하게 봉합되어 있는 상태였고, 절개부위를 덮고있던 거즈에는 출혈의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환자의 복부에 삽입된 JP catheter의 상태도 총 합이 100cc를 넘지 않고 있으니,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직은 흉부 엑스레이에서도 특이한 소견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이대로만 버텨준다면 조만간 진정제를 중단하고, 의식회복 여부를 관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호흡기 내과하고, 심장내과 협진의뢰 할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오셔서 특별한 말씀있으시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회신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걸려서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후 4시경 호흡기내과에서 회신이 도착했다. 현재 상태를 조금 더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혈압 하강에 대처하기위해 투여한 엄청난 양의 혈액과, 수액들로 인해 환자의 폐상태가 우려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많은 양의 체액은 결국 흉강내로 고이게 되고, 혈관 속 혈액의 양이 증가하면 폐부종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지속적 신대체 요법을 지속하며, 체액의 양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면 그때에 다시 호흡기 제거를 고려하자는 의미이다. 내심 인공호흡기 제거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아쉬운 답변이었다. 심장내과 역시 급격한 혈역학적 변화가 환자의 심장에 무리를 준 것 같으니 매일 심근효소 검사와 심전도를 통해 상태를 모니터링 하자는 답변을 보내왔다. 

'내일이면 인공호흡기를 제거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환자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해야했다. 내일도 환자는 그 자리에서 여전한 모습으로 누워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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