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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20화

by ASLAN_URO 2020. 8. 11.

"보호자 분 병원으로 오셔야겠습니다. 환자분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예? 어떻게 안좋아요? 이제 끝인가요? 얼마나 버틸 수 있나요?"

환자와 이별하기 하루 전 저녁이었다. 승압제에 대한 환자의 반응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고, 혈압은 강릉 앞바다 파도처럼 너울지게 그려지고 있었다. 이미 장시간에 걸친 승압제 사용으로 환자의 양측 손가락과 발가락의 괴사는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동맥혈 가스분석 결과도 환자가 더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기말 양압환기 압력을 높여가며, 폐포에서 폐를 지나는 동맥으로 산소를 우겨넣고 있는 상황이지만, 환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며, 심박 수는 거칠게 상승해 나아갔다. 

"지금 출발하시면 얼마나 걸리실까요?"

"한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지금 집에서 나가니까 제발. 제발. 제가 도착할 때 까지 우리 애기아빠 제발 좀 살려놔 주세요. 죽을 때 죽더라도 나는 꼭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제발 부탁드려요."

"한시간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약,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보호자분은 심폐소생술 진행에 동의하시나요?"

"심폐 소생술이고 뭐고, 일단 제가 갈때까지는 전부 다 해주세요. 제발요. 지금 택시 탔어요. 살려놔 주세요. 애기아빠에게 해 줄 얘기가 많아요. 살려놔 주세요!"

"알겠습니다. 도착하시면 바로 중환자실로 오세요. 제가 보안팀에게 미리 전달해두겠습니다."

한시간. 보호자가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현재 상태로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상태로 봐선 환자는 곧 사망할 것이다. 가느다란 생명줄이라도 이어나가게 하려면, 말초괴사와 상관없이 승압제를 올리고, 투석을 중단시켜야 한다.'

나는 현재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다. 혈압은 지속적으로 널뛰기를 하고 있었고, 심박수는 점차 빨라졌다. 호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혈액의 산성화는 촉진될 것이고, 이를 막지 못하면 결국 심정지가 오게 될 것이다. 혈액 산성화를 억제해주고 있던 투석기의 사용을 중단해야 환자의 혈압이 잡힐테지만, 결국 환자는 사망한다. 투석기 사용을 유지한다면, 널뛰는 환자의 혈압을 해소하지 못할 것이고, 심박수는 점차 빨라지고, 결국 심정지에 이르러 환자는 사망한다. 

두 방법 모두 환자가 사망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보호자가 도착 할 때 까지 환자를 살려두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수술 전에는 스스로 걸어들어왔던 환자가 이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상황에서 담당의로서 무거운 책임감에 억눌렸다.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는 이제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 나는 환자의 손을 잡고 있었고, 보호자가 환자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외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일단 CRRT(지속적 신대체요법, 투석) 중단해 주세요. A-line(동맥앞 측정도구) 다시 잡겠습니다. 준비해주세요. ABGA(동맥혈 가스분석)지금 다시 나가주시구요. 마지막에 Bicarb(bicarbonate)얼마였는지 확인해주세요. 당직의 불러주시고, DNR(심폐소생술거절에 대한 동의) 동의 안되었으니까, 심정지 오면 Code red(병원내, 심폐소생술 지원 요청) 울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보호자 분 도착하실 때 까지는 한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보호자분 오시면 환자 면담 시켜드리고, 그때까지는 무조건 숨을 붙여놔야 해요. 힘드시겠지만 도와주세요."

현재 환자 상태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졌다. 동맥혈 가스분석 결과 환자는 심각한 산성화 상태로 진입하고 있었다. 혈액의 산성화를 희석하기 위한 약물 투입이 이루어져야 했고, 널뛰는 혈압을 안정화 시켜야 했다. 승압제를 한도 이상으로 올려야 했다. 

"nopin 0.4mcg 으로 증량해주세요. Vaso 지금 얼마죠?"

"vaso는 0.32로 들어가요. 더 올릴까요?"

"vaso 도 0.4로 증량해주세요. 아까 부탁드린, bicarb 나왔을까요? 얼마죠?"

 "10이요, Continuos(지속적 주입)로 달까요?"

"cont(지속주입)은 계속 하고, IV로 3amp(ample, 약물 포장단위) 투여해주세요. ABGA 10분마다 확인해주세요. A-line 잡을거 준비 됐으면, 바로 주세요"

환자의 요골 동맥을 통해 바늘을 삽입하고, 동맥압력을 기계장치를 통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A-line(arterior line)을 삽입했다. 반복적인 동맥혈 채혈에도 유용하게 사용 될 수 있기에 중환자 처치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환자의 혈액 산성화를 막기위해 약물 주입이 이루어졌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환자의 상태는 덮쳐오는 해일처럼 빠른 속도로 악화되어 갈 것이고, 나와 동료들은 그 속에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다. 

"선생님 HR(심박수) 점점 쳐집니다. 지금 100미만으로 떨어졌어요."

"C-line(중심정맥관)통해서 CVP(중심정맥압, 환자의 체액 부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법) 측정해주세요. 지금 Fluid(기본 수액) 80이죠?"
"네, CCRT(지속적 신대체 요법) 하면서 80이었다가, 중단하면서 fluid 중단했어요"

"CVP 확인하고, fluid 더 주던가 할 께요. 재고나면 바로 알려주세요"

한시간이 일년같았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고막을 긁었고,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보니 동료들 모두가 예민해졌다. 환자의 심장 박동수는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50회를 간신히 넘기고 있었고, 평균 혈압은 40대로 떨어졌다. 

"norpin 0.5, vaso 0.5로 둘 다 올려주세요. 이번에 시행한 ABGA 나왔어요?"

"pH 7.0. pO2 50이에요." 

"Bicarb. 3amp IV injection 해주세요. 지금 바로!"

"선생님! flat(심정지) 이에요!"

"pulse 확인해봐요!, 차지선생님! 지금 바로 Code RED 띄워주세요!"

"Pulse(맥박) 없어요!" 

"compression 바로 하겠습니다. CPR board(심폐소생술용 받침) 넣어주세요. epi(에피네프린) 1amp IV로 주세요! 제가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나는 환자가 누워있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환자의 흉골(가슴 가운데 뼈)에 손바닥을 올리고, 심장마시지를 시작했다. code red가 발령되고 나서 응급소생술 팀이 하나 둘 환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투두둑 툭 툭]

환자의 늑골이 골졀되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압박을 하다보면 늑골의 손상은 피할 수 없다. 환자의 맥박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부딪히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교대하겠습니다. 다음 분 올라오세요. 손 떼겠습니다. 셋, 둘, 하나"

"리듬 확인하겠습니다! 맥박 확인하겠습니다!"

"pulse(맥박) 있습니다!"

다행히 심장압박 1cycle 만에 환자의 맥박이 돌아왔다. 하지만 끝난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인 회복이고 잠시후면 환자의 심장은 다시 멈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응급소생술팀 모두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당직 선생님 보호자 어디쯤 왔는지 확인해봐요!"

"네 선생님, 지금 전화 해보겠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약물로는 한계가 있고, 보호자가 도착할 때 까지 환자를 살려두겠다는 내 약속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10분 정도 남았다고 하십니다!"

"선생님! Rate(심박수) 다시 쳐집니다. pulse(맥박) 없어요!"

"다시 compression 시행해주세요! Epi 1amp 추가로 주세요!"

"ABGA 결과 나왔어요!"

동맥혈 가스분석 결과 혈액의 산성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심폐 순환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고있다는 증거였다. 사실 환자의 검사결과는 이미 사망한 사람의 결과라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bicarb 3amp추가로 투약해주세요. compreesion 계속 유지하시구요."

심장압박을 진행하는 인턴들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늑골의 골절이 악화되어 이제는 손으로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라, 고막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네 명의 인턴과 당직의, 내과 back up 전공의, 그리고 내가 손을 바꿔가며, compression을 지속하였다. 환자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이미 건넜다. 우리 모두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누구하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선생님 보호자분 도착하셨어요!"

"여보!" 

보호자는 환자에게 달려들었다. 환자의 가슴은 늑골 골절로 인해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고, 흉곽의 형체는 볼품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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