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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9화

by ASLAN_URO 2020. 8. 7.

환자의 회복은 더뎠다. 활력징후는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승압제의 사용이 없이는 현재의 혈압을 유지하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조금씩 승압제의 용량을 줄이려 시도를 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환자의 폐를 대신하고 있던 인공호흡기 역시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후 발생한 폐렴과 무기폐가 그 원인이었다. 환자의 폐는 더욱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 덧 2주가 흘러있었다. 매일 같이 환자의 곁을 지키던 보호자도, 생계와 관련된 일들을 중단 할 수 없어 병원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비뇨의학과 전공의 입니다.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CSICU(순환기 외과계 중환자실), 8번 자리에 계신 저희 환자분 상의를 좀 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네, 무슨일이시죠?"

"오늘이 Vent(인공호흡기) 14일 째 되는데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weaning(인공호흡기 제거)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이 되어서, Tracheostomy(기관절개술)를 의뢰드리려구요. 괜찮으실까요?"

"네, 컨설트 주시구요. 저희가 일정봐서 ICU(intensive care unit) bed side(침상옆 처치)로 시행하겠습니다. 동의서만 챙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인공호흡기 연결을 위한 기관 내 삽관 시 최대 지속기간은 2주가량으로 한다. 병원 방침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삽관용 튜브로 인한 연부조직 압박과, 감염우려 등을 원인으로, 이 기간 이상은 유지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 이비인후과의 도움을 받아 기관 절개술을 시행하게 되는데, 보통은 수술방에서 시행하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목에 기관절개 튜브를 넣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보호자에게 알려야 했다. 이미 몇차례 설명을 했었던 상황이지만,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 것은 심적 부담이 큰 일이었다. 

"보호자분 병원 입니다. 통화가능하세요?"

"네, 우리 애기아빠 죽었나요?"

너무나 담담한 보호자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환자의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던 모습을 상상했던터라, 담담하게 물어오는 보호자의 말투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입원부터 수술을 시행하고, 지금까지 3주. 꽤나 긴 시간을 고통속에 지내야 했던 보호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 

"아니에요. 그건 아니고, 상태는 호전도 악화도 없이 어제와 비슷하시지만, 인공호흡기를 더 유지 하셔야 하는 상황에서, 보호자분 동의가 필요해서 연락드렸어요. 지금 입을 통해 폐로 산소를 공급하는 튜브가 들어있잖아요? 그 튜브를 넣은지 2주가 지나서, 더이상은 유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목에 2cm 정도 되는 구멍을 뚫어서 인공호흡기를 연결 할 수 있는 장치를 삽입해야 합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삑."

보호자는 그렇게 하라는 말과 동시에 전화를 끊었다. 전과는 다른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아마 너무나 오래 지속되는 병원생활과 회복이 기약되지 않은 환자의 상태로 나에대한 불신이 쌓인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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