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5화

by ASLAN_URO 2020. 8. 1.

"JP 주세요. 양 쪽으로 하나 씩 더 넣을게요"

무거운 마음으로, 대바늘이 연결되어있는 JP catheter를 받아들었다. 복강 안에서부터 피부를 향해 대바늘을 통과시키고 고정하면 된다. 양쪽으로 하나씩 넣어 우측 하복부에 tip 위치하도록 고정했다. 열었던 복부를 복막, 근막, 피하지방층, 피부 순서로 닫아주었다. 수술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이제는 환자 스스로 회복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Intu(기관 삽관용 튜브)는 안빼고 나갈게요, 중환자실에 Vent(인공호흡기) 준비해달라고 연락하세요."

마취과 교수님은 환자의 마취를 위해 사용되었던 기관내 삽관튜브를 제거하지 않고 퇴실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대량출혈이 있었던 상황이고, 마취가 깨는 과정에서 환자가 몸부림을 친다면 애써 지혈한 복강내 출혈부위에서 다시 출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턴이 중환자실에서 침대를 가지고 수술장으로 들어왔다. 복부 봉합을 마친 자리에 하얗고 긴 거즈를 올리고, 반창고를 이용해 고정했다. 환자를 덮고있던 초록색 수술포를 걷어내자 환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와 감정적인 대립을 하던 때, 환자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었지만 지금 환자의 얼굴에는 무엇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이 창백했다. 

"인턴 침대 더 붙이세요. 환자 옮기겠습니다. 다리 잡아주세요. 하나,둘,셋"

우리는 조심스럽게 환자를 중환자실 침대로 옮기고, 침대를 끌고 수술장을 나섰다. 

"환자 도착하셨어요."

"8번 자리입니다."

모두 기다렸다는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미 인공호흡기는 환자의 폐를 대신할 준비를 마쳤다. 환자의 침대가 원래 위치에 놓여졌고, 환자의 몸에 수 많은 감시 장치들이 연결되었다. 환자의 혈압은 수출기 80, 평균 60mmHg 를 보이고 있었다. 승압제는 이미 모두 최고 농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지금 바로 post op lab(수술 후 혈액검사) 나가주세요. vent 조절하게 ABGA(동맥혈 가스분석)도 함께 나가주시구요. 피는 수술방에서 4개 썼고, 하나 남았을 거에요. 확인해서 나머지 더 올려주세요."

"네. 노티는 어떻게 드릴까요?"

"저한테 주세요. 환자 V/S 잘 봐주세요. active bleeding focus가 없었어요. 될 수 있는 곳은 모두 지혈했는데. 완전하진 않아요. JP 양 1시간마다 check 해 주세요. 오더(order) 수정은 당직 전공의한테 받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보호자분 면회는 어떻게 할까요?"

"환자분 정리 다 되면 얼굴 보실 수 있게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중환자실을 나왔다. 교수님께 전화를 드리려 하는 순간 수술환자 보호자 대기실 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교수님이 보호자에게 수술경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말 없이 교수님 뒤에 섰다. 보호자는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었다. 

"보호자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현재 승압제를 사용하며 겨우 혈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자연적으로 출혈이 멎지 않으면, 곧 이별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흐흑......흐흑...... 어떻게 해요. 나 어떻게 살아요. 불쌍한 우리아빠 어떻게 좀 해줘요. 살 수 있다고 했잖아요. 살려놔요. 나 못살아요."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수술장으로 들어가기 전 까지도 의식이 있었으니, 피만 멎으면 다시 회복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환자를 안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인공호흡기 연결을 위한 기관삽관용 튜브는 가지고 나왔습니다. 앞으로 추세가 안정화 될 때 까지는 인공호흡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수혈을 하면서 환자분이 회복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대로 환자는 진정제를 투여한 채, 한동안 잠을 자게 될 것이다. 활력징후가 안정화되고, 수술부위가 적절히 아물어 준다면 원래 상태로 회복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수님도, 보호자도, 나도 환자의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 각기 다른 감정으로 환자의 회복을 바라 볼 것이다. 환자가 회복되길 기다리는 기약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전공의 일기. > 하늘파란 강릉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공의 일기. 4-17화  (0) 2020.08.03
전공의 일기. 4-16화  (0) 2020.08.02
전공의 일기. 4-14화  (0) 2020.07.31
전공의 일기. 4-13화  (0) 2020.07.30
전공의 일기. 4-12화  (0) 2020.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