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2화

by ASLAN_URO 2020. 7. 29.

"보호자분이세요? 여기 병원입니다. 새벽에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통화가 가능하실까요?"

"네, 무슨일이세요?"

"환자분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CT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현재 상태는 복강내 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고, 현재는 승압제(혈압을 올리기 위한 약물)를 사용하고 있어요."

"네? 아까는 수술이 잘 됐다고 하셨잖아요. 어쩌면 좋아...... 살 수 있어요? 뭘 해야하나요? 살려주세요"

"수술이후 활력징후와 혈액검사는 괜찮았습니다. 수술과정에서도 특별히 문제가 될 사항은 없었어요. 출혈인지 아닌지, 출혈이 있다면 어디서 있는건지는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수술이나 시술을 해야하는 상황은 분명합니다. 혹시 병원에 계시나요?"

"아니요. 아까 수술끝나고 집에 잠깐 와있어요. 수술해야 하나요? 살 수 있는거죠?"

"댁이 어디시죠?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현재 출혈을 막기위해서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수술이나 시술을 피할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병원으로 오셔야겠어요."

"속초에서 출발하면 한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시간이 촉박해서 전화로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살 수 있는건가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의서는 녹취로 받도록 할게요. 녹음에 동의하시나요?"

"네."

보호자는 울먹이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단잠에 빠져있었을 보호자에게 좋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배를 열어야 한다는 설명을 하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재 환자의 상태가 복강내 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어디에서 피가 나고 있는지, 어떻게 피를 잡아야 할지는 CT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수술 명칭은 탐색적 개복술입니다. 오늘 수술한 부위에서 출혈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주변에 손상된 혈관이 있는지를 다시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전신마취로 진행되고, 수술시간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루에 마취를 두번이나 하게 되는데 괜찮겠죠? 만약에 출혈부위를 못찾으면 어떻게 하나요?"

"출혈부위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명확한 출혈부위가 없다면 지속적으로 수혈을 진행하면서 안정화되길 기다려야 합니다. 우선 CT 시행을 같이 해봐야하고 이제 곧 CT 실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만약 CT에서 명확한 출혈부위가 확인이 된다면, 수술이 아니라 혈관조영술을 시행해서 피가나는 혈관을 막아볼 수 있습니다. 혈관조영술은 보통 허벅다리나 손목의 정맥을 통해 진행하게 되는데, 출혈부위로 조영제를 주입해서 피가 새어나오는 곳을 확인 후 혈관을 coil이나 glue로 막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린 사항을 모두 이해하셨나요?"

"네 지금 바로 갈게요"

"전신마취 위험도가 크신분이라, 다시 마취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만약의 경우이긴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유지하고 나오실 가능성도 있고, 수술 중 사망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수술이나 시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분은 돌아가실거에요. 수술에 동의 하십니까"

보호자는 꺽꺽울며 수술 동의 의사를 밝혀왔다.

"CT 와 혈관 조영술 동의서도 미리 받겠습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조영제를 사용한 CT를 찍어서 출혈부위를 확인하겠습니다. 이후에 혈관조영술로 혈관을 막을 수 있다면 이 역시 시행할 계획인데 동의하십니까?"

"네, 할 수 있는건 다 해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환자가 CT실로 내려갔다. 아직까지 의식은 있는 상태였지만, 언제 꺼질지 모른다. 승압제는 이미 초기 용량의 8배를 투여하고 있었고, 수축기 혈압 60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환자 감시장치의 소리가 환자의 침대와 함께 중환자실에서 멀어져갔다. 제발 아무 일 없길 바랬다. 

[드드드드...드드드드....]

"네 비뇨의학과 전공의 입니다."

"마취과 입니다. 수술실은 C로젯 1번방 열어드리겠습니다. 입실 시간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 CT 찍고 판독받으면 대략 40분 뒤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집도는 박교수님께서 하실 예정입니다"

"네, 환자분 올라오실 때 전화한번 주세요."

"감사합니다."

 

'전공의 일기. > 하늘파란 강릉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공의 일기. 4-14화  (0) 2020.07.31
전공의 일기. 4-13화  (0) 2020.07.30
전공의 일기. 4-11화  (0) 2020.07.28
전공의 일기. 4-10화  (0) 2020.07.27
전공의 일기. 4-9화  (0) 202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