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1화

by ASLAN_URO 2020. 7. 28.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환자가 있는 8번 자리에는 많은 간호사들이 위급상황에 대처하고 있었다. 수혈은 진행 중이었고, 환자의 의식은 있었다. 

"환자분 지금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배가 아프세요?"

"으으..." 

간신히 내뱉은 환자의 대답을 근거로, 신체진찰을 시작했다. JP catheter의 양은 음압을 걸어두면 바로 차오를 정도로 배액되고 있었고, 색깔도 선혈에 가까웠다. 수술부위를 지지하기 위해 복대가 채워져 있었지만,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있었다. 수술 부위인 우측을 중심으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고, 통증의 양상이 전체 복부를 포함하는 상태였다. 복부 청진에서는 장음이 들리지 않았고, 환자의 결막은 허옇게 변해있었다. 

'출혈이다. 이건 틀림없는 복강내 출혈의 징후다.'

"피 세개 더 올려주시고, 응급 CT 시행할게요. 인턴 선생님 콜 해서 보호자에게 동의서 구득해주시고, IV(정맥주사) line 18G(바늘의 두께)로 하나 더 잡아주세요. CT 찍으면, 바로 수술방으로 들어갈 테니까 준비해주세요"

"네 선생님"

"혹시 새롭게 투여된 약물 있는지 확인해주시겠어요?" 

복강내 출혈에 의한 증상임이 확실했지만, 약물에 의한 쇼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간호 차트를 확인하며, 투여된 약물을 확인했다.

'특별한 약물은 없는데...출혈로 인해 저혈량성 쇼크가 올 게 분명해. CT 실 전화하고, 교수님께 보고 드려야 한다. 마취과에 전화해서 응급수술 열어달라고 해야 된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우선 현재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응급수혈을 준비해야 했다. 내가 내려오면서 지시한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해야 했고, 응급수술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당직의 어딨는 거야!? 지금 바로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하세요!"

[삐-삐-삐-삐-]

환자의 우측 요골동맥에 삽입되어있던 A-line을 통해 혈압을 감시하는 기계가 환자의 혈압 변화를 감지했다. 

[sBP(수축기 혈압) 40, Pulse(맥박) 140]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환자의 의식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당장 혈압을 올려 뇌와 심장으로의 혈류량을 늘려야 했다. 

"C-line으로 들어가는 혈액은 새로 잡은 18G 라인으로 바꿔주세요. 승압제 쓸게요. norpin 0.04 mcg continous로 연결해주세요. Hydration(수액공급) 1L drip(수액을 혈관으로 부어 넣음) 하겠습니다!. 인턴 동의서 빨리 받으라고 다시 전화하세요!"

"교수님 접니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어제 근치적 신장절제술 받은 환자분 현재 vital sign(활력징후)이 좋지 않습니다. sBP 40이고 의식도 흐려지고 있습니다. JP는 계속 음압을 걸었는데. 현재까지 bloody 하게 1L가량 배액 되었습니다. 복부팽만과 압통으로 보아 출혈 같습니다."

"CT 찍고, 피 주고, 수술방 알아봐!"

"네!" 

교수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당직 전공의가 도착했다. 

"환자를 이따구로 봐! Vital f/u 안 해? 이지경까지 뭐한 거야!"

"선생님이 보신다고 하셔서... 마음을 놓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빨리 CT 실 연락하고 어레인지 해서 지금 당장 CT 찍어. 찍고 바로 수술방으로 올려!, 네가 직접 가서 킵해!(검사 동안 환자 상태를 관찰하는 것) norpin 최대 0.32 mcg까지 증량하고 안되면 바로 Vaso(또 다른 승압제의 일종) 달 수 있게 준비해서 내려!"

환자의 상태가 급격한 변화를 보이다 보니, 나 역시 거칠어졌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어서 마취과로 연락을 취했다.

"선생님 저 비뇨 의학과 전공의입니다. 늦은 시간 죄송하지만, 수술방을 좀 열어 주실 수 있을까요? POD#1(post operation day 1, 수술 후 1일째) 환자입니다. sBP 40 정도 되는 상황이고 의식이 흐려집니다. JP가 1L 정도 drain 되었어요. bleeding control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네, 등록번호 알려주세요. 방 확인해서 바로 전화드릴게요."

마취과 의사와 통화가 끝날 때쯤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다. 혈색소 4.3, 정상 수치를 10~12 이상으로 보는데 현재 환자의 상태는 출혈이 있다는 증거이다. 환자의 배를 다시 열어야 한다. 열어야 저 환자가 살 수 있다.

 

'전공의 일기. > 하늘파란 강릉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공의 일기. 4-13화  (0) 2020.07.30
전공의 일기. 4-12화  (0) 2020.07.29
전공의 일기. 4-10화  (0) 2020.07.27
전공의 일기. 4-9화  (0) 2020.07.26
전공의 일기. 4-8화  (0) 2020.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