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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8화

by ASLAN_URO 2020. 7. 24.

"똑바로 고정해봐! 자꾸 흘러내리잖아!"

"네! 죄송합니다."

 

수술을 시작한 지 1시간이 흘렀다. 후복막에 고정된 신장은 그 형체를 드러냈다. 검붉고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우측 신장이 후복막강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고, 주변 조직은 염증의 여파로, 단단하게 유착되어 있었다. 신장을 박리해 나갔다. 혹여나 종양을 잘못건드려 터지기라도 한다면, 후복막은 물론 복강 내로의 전파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긴장하고 있었다. 미세한 혈관들을 혈관 클립으로 결찰해 나가며 수술은 너무도 섬세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ABGA 팔로우업 해주세요"

 

마취과 교수님의 요청으로 환자의 동맥에서 채혈이 진행되었다. 현재까지는 출혈도 없고, 순조로웠다. 혈압은 수축기 100정도 되었고, 심박수도 안정적이었다. 

 

"박리는 어느정도 된 것 같으니까 혈관 박리하자. 이선생이 위로 올라가"

"네 교수님"

 

위로 올라가라는 말은 환자의 머리쪽으로 자리를 변경하라는 말이다. 실제 환자가 누워있는 수술대 위로 올라가려한다면, 대찬 욕설이 날아올 것이고, 수술장에 영영 출입하지 못한다.

 

대정맥 주변에도 림프절이 커져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의 림프절은 지방조직과 구별이 어렵다. 다만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면, 크기가 커지고, 단단해 지는 특징이 있다. 대정맥은 체내 순환을 마친 혈액들이 모아지는 일종의 하수관과 같은 것으로, 동맥과 달리 직경이 크고, 탄성은 비교적 덜하다. 대정맥을 조심스럽게 박리하면서 림프절 절제를 함께 시행하고, 신장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신동맥과 신정맥을 노출시켰다. 

 

"똑바로 잡아! 동맥 박리하는 중이잖아!"

"죄송합니다"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어깨가 결려오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에 쥐가나는 상황이 반복된다. 하지만 신동맥을 노출시키는 것과 같은 중요한 상황에서는 힘듦을 억지로라도 이겨내야 한다. 혹여나 신장 동맥이 파열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출혈로 시야가 순식간에 가려지고, 이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교수님은 수술장에 자기와 환자의 동맥만 남은 듯, 날카로운 눈으로 박리를 이어갔고, 나는 그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혈전은 다행히 대정맥을 침범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됐다. 헤모락 라지(Hemolock, 일종의 클립으로, 수술중 혈관을 결찰할 때 쓰인다.) 세 개 준비해"

"나왔습니다."

 

[딸깍]

 

요관(신장에서 만들어진 소변이 방광으로 내려가는 관)을 결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더"

"하나 더 나왔습니다"

 

스크럽 널스(수술장 간호사)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환자의 요관을 결찰하고, 가위로 절제했다. 요관 주변을 주행하는 작은 혈관들을 결찰하고 박리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헤모락 라지"

"나왔습니다."

 

동맥과 정맥을 모두 결찰 한 뒤 가위로 잘라냈다. 30센티미터 가까이 되는 검붉은 신장이 환자의 배 밖으로 나왔다. 

 

"피잡자"

 

신장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해서 수술이 끝난것은 아니다. 박리 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미세 혈관 손상부위에서 출혈이 지속 될 수 있기 때문에 지혈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거즈를 배안에 넣어 출혈이 있거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확인했다. 

 

"지혈제 줘"

"나왔습니다."

 

노란색 지혈제를 혈관 절제 부위와 출혈 예상부위에 붙이곤 인체용 접착제를 이용해 고정했다. 배 안에서 더이상 출혈은 관찰되지 않았다.

 

"J-P(jackson-pratt catheter, 수술부위에 생길 수 있는 지연 출혈이나, 고여있는 액체를 빼내기 위한 용도의 도관) 넣고 끝내"

"네 교수님"

 

환자의 복벽을 관통하여 배액관을 삽입하고, 복막을 연속봉합술로 닫아주었다. 이후 근막층을 닫고, 피하조직 층을 봉합했다. 피부를 봉합하고, 드레싱을 적용했다. 수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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