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제가 설명드린 내용들을 이해하실 수 있겠어요? 더 궁금하신 건 있으실까요?"
"없어"
"여기 환자분께서 수술에 관한 사항들을 저에게 설명들으셨고, 이해하셨으면 체크해주시고, 성함, 싸인을 해주세요."
1시간이 걸렸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써서 설명했고, 최악의 상황까지 설명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없으나, 확률이 제로는 아니라는 부연설명을 추가하긴 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긴장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수술은 이틀 뒤로 다가왔다.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신관과 본관을 연결하는 구름다리의 통유리를 통해 저 멀리 주문진 바다가 들어왔다. 노을이 짙게 깔린 바다는 아름다웠다.
'강릉까지 와서 바다를 한번 못가보네...어서가서 환자 정리하고, 쉬자. 힘들어 죽겠다.'
어느덧 내일로 수술이 다가왔다. 마취과에서 환자의 상태가 수술 이후 중환자실 처치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니 중환자실을 구해두라는 답변이 왔다. 다행히 중환자실에 자리의 여유가 있어 내일 수술이 끝나면, 순환기/외과계 중환자실로 퇴실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최종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투석으로 인해 전해질 수치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오후 회진이 시작되었고, 교수님과 내일 있을 수술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일 incision(절개)은 long mid-line으로 준비해"
"네, 교수님. IVC thrombectomy(하대정맥 혈전제거술)는 직접 하실예정이신지요? CS(흉부외과) 어레인지 할까요?"
"필드(수술장)에서 상태 보고, thrombus(혈전) extent(범위)가 Renal vein(신정맥)은 확실한데... CT로는 IVC thrombus가 애매한 위치기도 하니 상황보고 결정하자. 혹시 모르니까 CS(흉부외과) 컨설트는 넣어둬"
"네, 교수님. final lab(최종혈액검사)은 normal range 회복했고, coa-battery 확인했습니다. 마취과 서식으로는 ICU(중환자실) prep 하라고 해서 우선 CSICU(순환기외과계 중환자실) 어레인지 했습니다."
"환자 보러 가자"
환자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무거운 분위기가 입구에서부터 느껴졌다. 환자와 보호자는 대화중이었다. 보호자의 눈가가 젖어있었다. 환자는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익일 수술예정인 환자분입니다. 내일 오후 1시경 C로젯 1번 방에서 Radical nephrectomy with IVC thrombectomy(우측 근치적 신장 절제술 및 하대정맥 혈전제거술) 시행 예정입니다."
간단하게 환자에 대해 브리핑을 시행한 뒤 교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수술은 적게는 3시간 정도 예상되고,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회진 시간은 전공의에겐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과이다. 오전 회진에는 새벽 내 환자들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는지 파악해야 하고, 퇴원할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여 보고해야 하며, 문제가 있는 경우 회진 전 이를 교정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환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오후 회진에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전에 타과에 의뢰한 내용을 파악해서 보고해야 한다. 다음날 수술과 관련된 문제는 없는지, 수술 스케줄은 적절히 배분되어 있는지 챙겨야 한다. 오늘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회진이 끝났다. 그렇지만 아직 내 일과는 끝이 아니다.
내일 있을 수술을 공부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힘들지만, 내가 의사인 이상 환자를 대하는데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면,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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