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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3화

by ASLAN_URO 2020. 7. 21.

 매일 오전 교수님의 회진 전 환자를 먼저 찾아 밤사이 불편한 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pre-rounding을 시행한다. 이 시간은 차트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시간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다. 어제 나와의 다툼이 있었던 만성 신장질환 환자는 교수님의 회진 이후 생각을 바꾸어서 투석을 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깔끔한 결정 과정은 아니었다. 

 

"잘 주무셨어요? 어젯밤사이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

 

 환자는 오른쪽으로 돌아누운 채 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왼쪽으로 돌아누운 상태였기에,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병실을 나섰다. 병실 입구를 나서는데, 화장실 쪽에서 걸어오는 환자의 배우자를 만났다. 밤새 걱정으로 심란해진 얼굴을 깨끗이 씻고 나온 것 같았다. 

 

"선생님, 우리 남편이 그렇게 못된 사람은 아니에요. 다 돈 걱정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네. 이해합니다."

 

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기에, 영혼이 담기지 않은 대답을 했다. 

 

"오늘부터 투석을 하는 거지요? 언제쯤 하게 될까요?"

"오전에는 투석을 위한 도관 삽입이 예정되어있고요, 오후에 1시 조금 넘어서 투석을 시작하면, 4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물론 처음 투석을 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투석 자체를 많이 힘들어하셔서 시간이 더 짧아질 수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보호자는 내 손을 잡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 역시 예를 갖추었다. 

 

오후 2시경. 투석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환자분 혈압이 불안정하고, 너무 힘들어하셔서 더 이상 투석을 진행하는 건 무리 같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진행하겠습니다."

 

"혈압이 어땠죠? 환자가 어떤식으로 힘들어하시던가요?"

 

"수축기 혈압이 90 미만으로 체크되고, 첫 투석이라 그런지 식은땀도 많이 흘리시고 더 이상 진행을 원치 않으세요. 사실 투석실에서도 계속 고함을 치셔서 다른 환자분들 치료에 방해가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예요."

 

투석실과의 통화를 끝내고, 보호자를 면담하기 위해 병실로 향했다. 보호자는 6인실 가운뎃 자리, 간이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상태였다. 

 

'깨울까? 기다리지 뭐'

 

보호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맨발에 발뒤축에는 각질이 일어나고, 한 여름 물길이 닿지 않는 논 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손톱은 짧았고, 손톱 아래에는 까맣게 고생이 쌓여있었다. 환자가 건강을 잃고 난 뒤 생계를 책임져 왔으리라. 예순을 넘겼을 보호자는 그동안 마음고생으로 미뤄왔을 단잠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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