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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2화

by ASLAN_URO 2020. 7. 20.

하루가 지났다. 

환자의 상태는 2주전 입원하기 전 상태보다, 더욱 악화되어 더 이상 투석을 미루면 안되는 시기였다. 

 

"당장 오늘부터는 투석을 진행하셔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지체하기가 어려워요. 수술은 수술대로 준비를 하고, 투석을 해서 전해질 수치를 맞춰야 합니다."

"무슨 투석을 해, 수술이나 해줘"

 

 환자는 여전히 투석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고, 기계장치에 의존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불안한 듯 보였다. 환자의 칼륨수치(포타슘, K+)는 이미 정상 상한치를 2이상 웃돌고 있었고, 소변량은 하루에 600cc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은 점차 붓기 시작했고, 정강이를 살짝 누르면, 압박부위가 다시 부풀어오르지 못하는 pitting edema를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지속되다가는 심정지나 폐부종으로 전신컨디션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나는 무거운 분위기로 환자에게 투석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또 반복하였다. 투석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환자의 몸에 투석용 도관을 삽입하는 술기가 먼저 선행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영상의학과와 협진이 필요했다. 영상의학과에서는 초음파로 환자의 정맥에 투석용 도관을 삽입하는 술기를 시행하는데 초음파 유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패가능성이 적고, 그만큼 환자의 통증도 감경된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데 대한 죄책감으로 치료비를 줄이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투석자체를 너무도 완강히 거부하였다. 옆에 있던 보호자는 그래도 살아야하지 않겠냐라며 환자를 설득했지만, 환자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화가났다. 첫째로, 이 환자를 위해 내가 준비했던 치료의 과정들이 하나도 진행되지 않았고, 둘째로, 환자의 보호자에 대한 태도가 너무도 무책임했다. 보호자는 체념할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환자를 설득했지만, 환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수술이나 해줘. 뭘 자꾸 하라그래!"

"이 상태론 수술도 못받아요! 제발 말 좀 들으세요. 보호자분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요?"

"니가 뭔 상관이야!"

 

 환자와 나는 서로의 감정이 격앙되어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주고 받았다. 환자와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그대로 병실을 나와버렸다.

 

 환자와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의 상태를 너무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병이라는 것이 원발 부위를 떼어낸다고해서 모두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술을 시행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 수술이후 남은 장기가 제 기능을 찾아가는 동안 인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의 균형을 맞추는 것 역시 어렵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러한 절차를 모른다. 수술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들을 설득시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오후 회진 시간이 되었다. 

"상환 이번 주 금요일 Rt. radical nephrectomy with IVC thrombectomy(우측 전신장 절제술 및 하대정맥 혈전제거술) 시행예정인 환자입니다. 포타슘 7점대라 금일 네프로(신장내과) 컨설트(협의진료)시행하였고, HD(혈액투석) 필요하다는 답변받았습니다."

"그래서 투석은?"

교수님의 당연한 질문이 이어졌다.

"환자 거부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는 뭐하는 놈이 그것하나 설득못해?"

"죄송합니다."

 

예측 가능한 교수님의 답변이었다. 투석이 필요한 환자에게 투석을 진행하지 못한것은 내 설명이 부족했거나, 환자가 나에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믿고 치료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거늘...... 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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