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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화

by ASLAN_URO 2020. 7. 18.

 강릉으로 파견을 갔을 때, 나는 환자를 잃었다. 만성 신장질환을 앓고 있었던 60대 남자였다. 양쪽 신장은 이미 그 기능을 대부분 소실했고, 투석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환자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한동안 병원을 찾지 않았었다. 

 

 환자가 다시 병원에 내원했을 때에는 기능을 소실한 신장 중, 우측 신장에서 악성종양이 의심되는 병변이 생겨난 때였고, 그 크기가 이미 15cm를 넘어선 상황이었다. 신장의 세로길이가 14cm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종양의 크기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측 신장을 절제하기 위한 수술을 준비했다. 고혈압과 당뇨, 만성 신질환으로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는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수술 전 시행한 심장 초음파에서도 이상이발견되었는데 좌심실과 대동맥의 역류를 막아주는 판만에 부전이 생겨 심박출량이 현저히 감소한 상황이었다. 수술 위험도가 높고 수술을 하게된다면 환자는 평생 투석을 진행하게 될 것이었다. 

 

" 환자분 지금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요. 위험이 상당히 높습니다. 만성 신질환을 앓는 분들의 대부분은 수술 중 출혈 위험성이 높고, 수술 후에도 지연출혈 가능성이 높아요. 전신 마취에도 견디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지말라고?"

 

환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사람 말투가 원래 이래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옆에 있던 환자의 배우자가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는건 잘 알고있어요. 하지만 이미 신장의 종양이 커져서 다른 장기들을 압박하고있고,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다른 장기로의 침윤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보여요. 수술과 마취의 위험성이 매우 높지만,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환자는 대답이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배우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아는데 저희도 생각이 필요해요. 혹시 수술을 하면 입원은 얼마나 해야 할까요?"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1주일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만 합병증 발생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보다 길어질 것 같구요."

 

"제가 일을 안하면 병원비를 보탤수가 없어요. 수술은 진행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시간을 좀 주세요"

 

배우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

 

 상당수의 환자들은 의료진에게 꽤나 호전적이다. 치료가 지연된 것에 대한 불만이나 본인에게 닥친 큰 일에 대한 두려움이 그 원인일 것이다. 

 

'설득을 하는게 맞는 것이겠지? 그냥 환자랑 보호자 선택에 맡겨두고 멀찍이 지켜볼까? 오후에 다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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