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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4화

by ASLAN_URO 2020. 7. 22.

"환자분 투석실에서 도착하셨습니다."

 

5분이 지났을까? 환자가 투석실에서 병실로 이동해왔다. 휠체어에 타고 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독기 가득했던 눈은 반쯤 감겨있었고, 투석으로 진이 빠졌는지 영 맥이 없는 모습이었다. 요란한 환자 도착 소식으로 보호자가 깨어났다. 

 

"안 힘들었어? 땀은 왜 이렇게 많이 났어. 어쩌면 좋아"

 

보호자는 나를 본체만체하고는 환자에게 달려 나갔다. 환자는 대꾸할 여력도 없는지 휠체어에서 간신히 일어나 침대로 옮겨갔다. 아침에는 오른쪽으로 누 운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투석이 많이 힘드셨죠? 첫 투석인데 그래도 잘 이겨내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

 

환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지쳤다는 듯 눈을 감았다. 

 

"선생님, 투석하러 내려간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말 괜찮을까요? 앞으로 이걸 계속 어떻게 받아요."

 

"첫 투석이라 그럴겁니다. 금방 익숙해지실 거예요. 너무 걱정 마셔요"

 

"이번 주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던 수술을 진행하겠습니다. 그 사이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앞으로는 약물 조절도 병행해서 회복이 빨라지도록 할 예정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수술과 관련된 사항들을 설명드릴게요. 수술 동의서 작성도 같이 할 예정이니까 환자분과 보호자분 자리 비우지 마시고 계시도록 하세요. 오후 6시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환자의 안쓰러운 모습과 보호자의 애틋함을 느낀 터라, 오늘 아침 환자를 대상으로 느꼈던 분노와 비슷한 감정들은 사그라들었다. 병실을 나설 때, 내 마음도 입구를 향해있었다.

 

 수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수술을 진행하기 위한 가장 큰 숙제인 투석을 해결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는 것과, 수술을 잘 시행하는 것, 마지막으로 수술 후 잘 회복하는 것이 남았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과정들이다. 

 

 환자를 대하는 동안 나는 수많은 감정들을 느낀다. 기쁨, 분노, 우울, 당혹, 슬픔. 단어들로 나열하기에 애매한 감정들까지 더하면 조금 과장해서 세상 모든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들이 때로는 내 삶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는 감정의 변화들이 나를 지치게 하지만, 괜찮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루를 살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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