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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9화

by ASLAN_URO 2020. 7. 26.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수술 끝났어요, 환자분 눈 뜨세요."

 

환자는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환자가 마취가 된 지 벌써 4시간이 넘게 흐른 상황이었다. 마취과 교수님과 회복실 간호사는 환자의 활력징후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환자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환자의 마취 상태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뇌파 장치가 환자의 의식이 회복되고 있는 상황을 알려왔다. 

 

"환자분 눈 뜨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눈을 뜨셔야 입에 있는 관을 제거해 드릴 수 있어요."

 

환자는 통증 때문인지 제어가 되지 않는 몸부림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수술대에서의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를 고정하는 체스트 밴드와 니 밴드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몸에 힘 빼시구요. 어서 숨을 크게 쉬세요. 마취가스가 어서 빠져야 합니다. 환자분, 움직이지 마세요. 떨어집니다."

 

수술장으로 이송용 침대를 가지고 들어온 인턴 선생님과 나는 환자의 필사적 움직임을 억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의 남성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몸부림을 치면, 제어하기가 매우 어렵다. 힘을 주었다. 환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양 옆에서 환자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윽고 환자가 눈을 떴다.

 

"환자분 이제 숨을 크게 쉬세요. 더 크게 쉬세요. 입에 있는 관이 불편하실 겁니다. 숨을 크게 쉬시면 바로 제거해 드릴게요"

 

환자의 입에 물려있는 intubation tube(수술 시 전신의 근육을 모두 이완시키기 때문에 자발적인 호흡이 불가능해진다. 이때, 환자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마취기구에서는 일정량의 산소를 공급하게 되는데, 이 산소를 폐로 직접 전달하기 위한 도관으로 입을 통해 기관(trachea)까지 삽입된다.)에 뿌연 환자의 날숨이 확인되었고, 산소 포화도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입을 벌려보세요. 이제 입에있는 관 빼 드릴게요. 자, 아 해보세요"

 

환자의 입에서 튜브가 제거 되었다. 이어서 가래를 제거하기 위한 석션이 이어졌다. 

 

나와 인턴은 환자의 몸을 고정하고 있던 밴드를 풀고 환자를 옮기기 위한 준비를 했다. 수술실에서 퇴실하기 전 수술 부위의 출혈을 확인하기 위해 넣어 둔 JP catheter의 색과 양을 확인했다. 

 

'20cc, 아직은 좀 붉은데? 나가서 다시 봐야겠다.'

 

"환자 옮기겠습니다. 하나, 둘, 셋"

 

90kg에 이르는 환자의 몸이 이송용 침대로 옮겨졌다. 체온유지를 위해 이불을 덮어주었고, 수술장에서 빠져나와, 중환자실로 향했다. 

 

"환자 나왔습니다. C로젯 1번방 환자구요, 비뇨의학과 환자입니다."

"8번 자리로 가시겠습니다."

 

환자는 눈을 찡그리며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지속주입용 진통제가 투여되고 있었으나, 약효가 나타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환자 분 수술 무사히 잘 마쳤어요. 고생하셨어요."

 

환자의 활력징후를 확인했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이제 중환자실에서 하루나 이틀정도 경과를 관찰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Post. op(Post operation, t수술 후) routine lab(혈액검사), 처방대로 시행해 주세요. ABGA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주시구요."

"네 선생님, 상태보고는 당직선생님께 드릴까요?"

"아닙니다. 저한테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결과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수술모를 벗고, 마스크를 내렸다. 긴장감이 한숨이 섞여 빠져나왔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좌측 어깨가 아팠다. 

 

"교수님 환자 중환자실로 무사히 나갔습니다. 보호자분 면담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까 내가 면담했어. 오늘 고생했으니까 일찍 들어가서 쉬고. 당직보고 검사 결과 나한테 노티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고생하셨습니다."

"띠딕."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 항상 이런식이지만 불만은 없다. 겉 모습만 차가운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담마저 차가운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따뜻하다. 그저 환자가 낫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기쁨인 사람. 십수년간 같은 수술을 하고 있지만, 항상 공부하려 노력하는 사람. 주말없이 십수년간 출근하는 사람. 그런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어 나 역시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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