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3화

by ASLAN_URO 2020. 7. 30.

"선생님 CT 결과 나왔습니다. 현재 Active bleeding focus(활동성 출혈, 피가 나고 있는 부위)는 찾을 수 없으나, 복강 내 Hematoma(혈종, 피가 굳은 상태의 덩어리)가 크게 확인되고 있고, 위치는 우측 하복부입니다. Angio(혈관조영술)를 시행해 볼 수 있으나. 환자 활력징후가 좋지 않아서 Exploration(탐색적 개복술)하는 게 낫겠다는 판독입니다. 환자 혈압이 sBP(수축기 혈압)가 50까지 떨어져서 Vaso 시작하겠습니다."

CT실에서 당직 전공의의 전화가 걸려왔다. 현재 상태가 좋지 않고, 명확하게 출혈 부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다른 종류의 승압제까지 투여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한시간을 버티지 못할것이다. 

"피5개 준비해서 수술방으로 올리고, FFP(동결 혈장), PC(혈소판) 같이 올려. 수술방은 C로젯 1번방으로 어레인지 됐으니까 교수님께 전화드려서 지금 준비 시작하겠다고 보고하고"

"네 선생님"

당직 전공의와 통화를 마친 뒤 서둘러 수술장으로 이동했다. 평소에는 2분이면 충분하게 닿았던 거리가, 오늘은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살려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수술장에 도착해서 환자의 CT를 확인했다. 조영제가 새어나가는 모습은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커다란 혈종이 환자의 하복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미 복압이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복압에 의한 미세 혈관의 출혈 지연이 있을 수 있었다. 명확한 위치가 없다는 것은 수술장에서도 출혈부위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환자가 입실했다.

서둘러 환자를 수술용 침대로 옮겼다. 아직까지 의식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희미했다. 

"Supine(바로누운자세)으로 수술 할 예정입니다. 마취과 선생님 induction(마취 시행)부탁드리겠습니다."

[띠-띠-띠-띠-]

환자 감시장치는 쉴새없이 울어댔다. 수축기 혈압은 sBP 60정도. 승압제를 사용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있는 상황이었다. 

"피 바로 연결해주세요. C-line(중심정맥관)으로 투여해주시고, Hartmann solution(수액의 일종)연결해주세요. 리도카인 투여해주세요, 환자분 마취 시작합니다."

마취과 선생님의 주문이 이어졌다. 이 수술방 안에서 긴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차가운 수술방이 더 차가워졌다. 몇 가지 약물이 더 투여되었고, 환자의 목으로 튜브가 삽입되었다. 

"마취 됐습니다. 준비하셔도 되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환의를 벗기고, 수술 부위에 붙어있는 소독용품들을 정리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닫아두었던 환자의 복부가 드러났다. 외부로의 출혈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소독 장갑을 착용 후 환자의 복부에 소독을 시행했다. 소독약이 마르길 기다렸다. 남은 소독약을 소방(작은 크기의 천으로 만든 수건)으로 닦아냈다. 환자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가슴과 무릎을 고정했다. 복부 주변을 둘러 초록색 방포로 수술 공간을 만든 뒤 대공(수술 부위만 드러나게 절개가 되어있는 수술포)으로 환자의 다리와 얼굴을 가렸다. 지혈을 위한 보비(전기 소작기)를 연결한 뒤 선을 정리했다. 대량의 출혈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석션(흡인기구)을 두 개 설치했다. 연결이 끝나고, 환자의 복부를 향해 수술 조명을 맞추었다. 준비가 끝났다. 긴장감에 숨이 턱 막혀왔다. 환자의 상태를 수술장 참여인원과 공유하는 타임아웃을 진행했다. 때마침 교수님이 수술방으로 입실했다.

다시 시작이다.

'전공의 일기. > 하늘파란 강릉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공의 일기. 4-15화  (0) 2020.08.01
전공의 일기. 4-14화  (0) 2020.07.31
전공의 일기. 4-12화  (0) 2020.07.29
전공의 일기. 4-11화  (0) 2020.07.28
전공의 일기. 4-10화  (0) 202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