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공의 일기./하늘파란 강릉에서

전공의 일기. 4-14화

by ASLAN_URO 2020. 7. 31.

[딸깍 딸깍 딸깍, 툭툭툭툭]

환자의 복부를 움켜쥐고 있던 스테플러(봉합용)와 나일론 매듭을 풀었다. 심하게 팽창된 복부로 인해 칼이 살짝 닿기만 해도, 봉합용 나일론은 쉽게 끊어졌다. 피부의 봉합사들을 모두 제거하고 난 뒤, 근막이 드러났다. 수술 후 탈장을 방지하기 위해 단단하게 봉합하기 때문에 쉽게 잘라내기 어려웠다. 시간이 걸려, 근막이 다시 열렸고, 장을 감싸고 있는 복막이 드러났다. 복막을 절개해 나갔다. 

"석션 준비해. 양쪽에서 둘 다 석션해"

교수님의 지시가 있었고, 나와 당직 전공의는 환자의 양쪽 편에 서서 석션을 준비하였다. 복막의 2/3 이 절개되어 갈 때쯤, 시뻘건 피 덩어리가 배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복강 내 출혈이었다. 환자의 복강을 가득 채우고 있던 혈종은 그 양이 3L가 넘는 것으로 보였다. 

"석션 제대로 해!"

쏟아져 나오는 혈액을 빨아들이기에는 두 개의 흡인기도 버거워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혈종을 걷어내고, 흡인기로 제거가 되지 않는 혈종들은 수술방 바닥으로 흘려버렸다. 혈종이 모두 제거된 뒤 환자의 복부가 완전히 드러났다. 출혈 부위를 찾아야 했다. 작은 혈관의 손상이라도, 지혈이 잘 되지 않는 경우 복강 내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동맥 손상이라면 더더욱 빠른 속도로 출혈이 진행된다. 환자의 신장이 있었던 자리를 중심으로, 대동맥과 대정맥 부근 및 부신으로 향하는 혈관들까지 모조리 살펴보았다. 혈관 손상으로 인한 출혈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명확한 출혈부위도 확인이 되지 않았다. 다만, 절개 부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woozing bleeding(조직을 통해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형태의 출혈)이 관찰되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명확한 출혈부위가 있다면 결찰을 통해서 원인을 해결할 수 있지만, 복강 전반에 걸쳐 특별한 지점 없이 새어 나오는 출혈이라면, 해결이 불가하다. 보비(전기 소작기)를 이용하여 절개 부위 주변을 지혈하기 시작했다.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연기가 수술방을 가득 채웠다. 

"간호사, 가서 피 8개 더 타 오세요. vaso 최대 용량으로 늘려"

마취과 교수님의 주문이었다. 환자의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고, 수액과 수혈로 근근이 유지하던 혈압이 복강을 열자마자 급속하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박교수 님 환자 위험해요 지금. 얼마나 걸립니까?

"삼십 분 정도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명확한 출혈부위가 없으니,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지혈을 시행해야 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환자의 혈압이 유지되지 않으니 수액과 수혈을 충분히 진행하고, 저절로 출혈이 멈추길 기다려야 했다. 

"보호자 와있나?"

"속초에서 출발해서 한 20분 정도면 병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인턴 연락해서 보호자 바로 수술장 앞으로 오시라고 해. 내가 나가서 설명할 테니"

"네 교수님."

그 뒤로 30분간 지혈이 계속되었다. 난감한 문제였다. 대량 출혈에 따른 수혈로, 이미 DIC(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ation, 파종 혈관 내 응고,  혈소판이나, 응고인자가 혈과 내에서 응고가 되면서, 출혈성 경향이 악화되는 상황)와 있을 것이다.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지혈을 하면, 주변 조직이 손상되면서 다시 출혈이 지속되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해결방안으로 응고인자 수혈과 혈소판 수형을 지속하면서 저절로 피가 멈춰주길 바라는 방법이 있지만, 배를 연 이상, 피가 멈추지 않는 상태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교수님 보호자분 도착하셨습니다."

"더 이상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JP 양 옆으로 두 개 더 넣고, 수혈하면서 보자."

"네 교수님."

한 시간에 걸친 탐색적 개복술은 끝이 났다.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지 못하고, 수술실을 나왔고,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만성 신장 질환 환자를 수술하는 것을 일반적인 수술보다 위험도가 상당히 높다. 지혈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만성 질환으로 인해 주변 장기와의 유착이 심하기 때문에 수술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리고, 수술 후 회복도 더디다. 지혈술을 시행했지만, 계속 피가 나고 있다. 수술실 입실 전까지 의식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낮은 혈압에도 회복을 기대했다. 제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진행되지 않고 무사히 회복되길 기도해야 한다.  

'전공의 일기. > 하늘파란 강릉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공의 일기. 4-16화  (0) 2020.08.02
전공의 일기. 4-15화  (0) 2020.08.01
전공의 일기. 4-13화  (0) 2020.07.30
전공의 일기. 4-12화  (0) 2020.07.29
전공의 일기. 4-11화  (0) 202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