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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과 와인.

숨은 맛집, 흑진주 [강릉 맛집-중화요리]

by ASLAN_URO 2020. 10. 14.

 강릉에 파견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병원 주변에 이렇다 할 음식점이 없다. 병원 정문을 나서 길을 건너면 편의점 몇 곳과 약국들이 전부이다. 그래서 슬프다. 병원 식당에서 제공하는 영양가 풍부한 음식도 삼일이면 지루해지는데, 잠깐 시간 내어 음식점에 가려고 하면, 족히 20분은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병원을 감싸안는 푸릇한 산들이 내뱉는 깨끗한 공기만으로는 도무지 배가 차지 않는다. 병원 밥 먹기 싫어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기숙사를 나섰다. 등산하듯 정문까지 열심히 걸어가 횡단보도에 섰다. 마주 보이는 편의점 건물을 스윽 살펴보고는 편의점 2층에 위치한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향했다. 

 

 

 

 이름이 참 묘하다. [흑진주] 몇 번 가보았던 곳이지만, 볼 때마다 이름 참 잘 지었다 하고 생각했다. 병원 사람들에게는 소문난 간짜장 맛집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곳의 간짜장이 맛있어 '요리'를 제쳐두고 간짜장부터 먹었지만, 이번에는 요리부터 먹기로 했다. 편의점 옆 계단에 들어서 촘촘히 놓인 층계를 올라 식당에 들어서서 메뉴는 보지도 않고, 탕수육과 짬뽕 국물을 주문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아직도 탕수육이 특별한 음식으로 느껴진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먹었던 바삭하고 달콤한 탕수육에 대한 기억이 아주 스위트 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주문하면, 테이블 건너 주방이 들여다 보이는데, 화려한 불쇼가 진풍경이다. 감칠맛 담뿍 담긴 요리 향이 콧가를 간질이면,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을 만날 수 있다. 

 

 

 

 탕수육이 나왔다.

 

 

 

부먹 찍먹 선택하는 것은 사치다. 이곳에선 선택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부먹만이 존재한다. 사장님께 찍먹으로 내어달라 부탁한 적 있었는데, 안된다고 하셨다. 그러려니 했다. 맛있으니 이해하게 된다. 

 

튀김옷은 적당히 바삭하고, 소스는 꿀처럼 달콤하다. 식초와 고춧가루로 맛을 더한 간장에 살짝 찍어먹으면, 황홀하다. 일행 중 술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형님이 고량주를 주문했다. 술은 잘 못하지만, 음식과의 마리아주를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잔 기울이며, 달콤한 탕수육에 빠져 있으면, 짬뽕국물이 나온다. 간짜장만 먹었지, 짬뽕을 먹을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술국 대신하여 주문한 이 국물이 아주 물건이었다. 

 

짬뽕은 진하다.

 

 

강릉에서 유명한 교동짬뽕을 먹어봤지만, 이곳이 더 맛있다. 불향을 머금은 진하고 걸쭉한 짬뽕을 한 숟갈 입에 담으면, 알싸한 고량주가 저절로 씻겨 내려간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내가 해주는 정성스러운 밥상(특히 얼갈이 소고기 찌개)에 비할바 아니지만, 파견 노동자의 고단함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여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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