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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39

전공의 일기. 5-11화 수술 환자가 입원했다. 내일 예정된 경요도 방광종양 절제술을 위해서였다. 병실 복도에서 만난 환자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내일 예정된 수술은 사실 종양의 완전한 제거가 목적이기 보다는 방광 점막 하층에 위치한 종괴의 성상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병실 복도에서 환자를 마주했다. "이선생, 나왔어." "얼굴이 너무 안좋으세요. 걱정이 많이 되시죠? 최근에 잠을 잘 못주무셨어요?" "어 그려, 방광에 뭐가 또 보인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이 되는거여. 이제 살만큼 살았지만, 이렇게 죽는건 아닌가 무서워." "내일 있을 수술은 수술 자체가 어렵거나 위험하지는 않아요. 전에 내시경실에서 했던 조직검사는 방광 점막에 국한된 검사이기 때문에 이번에 수술방에서 조금 더 깊이 절제해서 이게 어떤 종양인지를 알.. 2020. 9. 21.
전공의 일기. 5-10화 재발 6개월이 지났다. 백발 중절모 할아버지의 존재는 이미 흐릿해져 있었다. 오후 회진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동기로부터 그 환자의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마침 오늘이 할아버지의 정기 검진이 있었던 날이었다. "야, 너 혹시 000 이라는 환자분 알아?" "어, 왜?" "오늘 Cysto(방광내시경) 내가 오후에 담당이었잖아, 그분이 네가 내려와서 검사하게 해달라고 하셔서. 아는 사람인가 했지" "아마도 응급실서부터 내가 쭉 봐오던 환자분이라 그럴거야. 그 할아버지 젠틀하지 않아?" "내가 오늘 검사 담당이 나라고, 그 선생은 수술 들어갔다고 하니까 그냥 수긍하시긴 했어." "검사 결과는? 괜찮았어?" "Radiation Cystitis(방사선 방광염)는 여전히 보이고, 출혈은 없었는데, Bladder(방광.. 2020. 9. 20.
전공의 일기. 5-9화 안도감 불이 꺼진 검사실에 들어섰다. 이미 다른 환자가 검사용 침대에 누워 방광 내시경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독된 내시경 기구가 놓이고, 환자의 회음부를 소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검사가 많네요" "어서오세요, 선생님. 여기 환자분 준비 시작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스테이션에 앉아 검사를 받게 될 환자의 의무기록을 확인했다. 산부인과 환자로 난소와 자궁에 생긴 종양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로 되어있는 환자였다. 여성의 경우 좁은 골반강(pelvic cavity) 내에 자궁과 난소, 방광이 조밀하게 모여있기 때문에 여성 기관에서 발생한 문제가 방광을 침범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때문에 수술 전 CT나 MRI에서 확인이 되지 않는 점막의 표재성 변성이나, 작을 종양을 발생 유.. 2020. 9. 19.
전공의 일기. 5-6화 방광내시경 방광 내시경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단단한 경성 내시경과, 유연한 연성 내시경. 연성 내시경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위, 대장 내시경과 유사하지만, 총 길이가 조금 더 짧고, 두께가 얇다. 연성 내시경은 검사자가 내시경의 원위부(distal, 카메라 렌즈 끝)을 조작하여 굴곡을 조절 할 수 있기 때문에 방광의 거의 대부분을 관찰 할 수 있고, 통증이 경성 내시경보다는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기구와 결착하여 방광내에서 행해지는 내시경적 시술을 하는데는 제한이 있다. 연성 내시경으로 시행 할 수 있는 시술에는 방광 내 변성조직에 대한 조직검사 및 작은 출혈 부위에 대한 지혈, 5mm 미만의 이물질 제거등이 있다. 경성 내시경의 경우에는 이름 그대로 단단한 구조로 이루어진 쇠 파이프이고, 직경은.. 2020. 9. 3.
전공의 일기. 5-5화 수술실 "선생님 여기 수술장이에요. 인턴선생님이 환자분 모시고 들어오셔서 전화드렸어요" "네, 지금 엘리베이터 앞이에요. 금방 갈께요." 응급실의 혈뇨환자가 수술장으로 입실을 했다는 연락을 받은 뒤, 나는 수술장으로 향했다. 하루에도 열댓번씩 오가는 장소이지만, 매번 수술복을 갈아입는 갱의실을 지나칠때면 긴장을 하게 된다. 하늘색 수술모를 착용하고, 수술장용 마스크로 교체했다. 가운을 캐비넷에 정성스럽게 걸어두곤 환자가 있는 수술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혈종이 다 안빠지면 어쩌지? 입원장을 내야하나? 일단 계획은 혈종 다 제거하고, 피나는 곳은 지지고, 소변줄을 다시 넣고 색을 보다가 괜찮으면 퇴원해서 다음주 초에 외래를 내원하시도록 해야겠다.' "안녕하세요. 아까 응급실에서 뵈었던 비뇨의학과 전공의에요. 긴.. 2020. 8. 25.
전공의 일기. 5-3화 내가 환자를 다시 만난것은 1주가 지난 화요일이었다. 좌측 옆구리 통증을 주소로 내원한 다른 환자를 검진하는 도중, 낯익은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백발에 반 쯤 벗겨진 머리숱, 점잖게 갈색 양복을 입고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비뇨기과 선생님한테 전화 좀 해줘. 아파서 죽겄어. 전에도 그 선생님이 봤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은 선생님한테 전화 해줘." "그 선생님 누구요? 연락하고 오신거에요?" 간호사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연락을 하고 와. 그냥 그 선생님이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전화하면 와서 봐줄꺼야" "환자분 저희가 오신 순서하고, 응급한 정도에 따라서 담당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거에요.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전화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지난번에 오신.. 2020. 8. 21.
전공의 일기. 5-2화 "여기 누워보세요. 머리는 저쪽으로 두시고 누우시면 됩니다" "아휴 죽겠다. 빨리좀 해줘. 힘들어" 환자의 하복부는 팽만이 심한 상태였고, 작은 압력에도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응급의학과에서 삽입한 도뇨관(foley catheter)는 16fr.(도뇨관의 두께를 나타내는 단위)로 현재 환자의 상태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두께였다. "환자분 지금 들어가있는 소변줄을 제거하고, 조금 더 두꺼운 소변줄로 교체하겠습니다. 그래야 방광안에 있는 피떡(혈종, Hematoma)을 제거 할 수 있어요.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참아주세요. 빼겠습니다!" 도뇨관 끝에는 balloon(풍선)이 있는데, 방광에 도뇨관이 삽입이 되면 풍선을 부풀려 소변줄이 방광압으로 인해 빠져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도뇨관을 제거할 .. 2020. 8. 18.
전공의 일기. 5-1화 당직교대 이후 어김없이 콜폰이 울렸다. 하루에도 백통이 넘는 전화로 실제로는 울리지 않았음에도 울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되는 때가 있었기 때문에, 전화기를 들어 화면을 보았다. 전화기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응급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네, 비뇨의학과 당직입니다" "응급실 6구역, 000 환자가 의뢰되었습니다. 응급실 6구역, 000 환자가 의뢰되었습니다." 응급실의 호출은 응급의학과의 의뢰 시 자동으로 통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영혼없는 기계음이 반복되고는 자동으로 끊긴다. "네, 갑니다. 가요. 그만 전화하세요. 제발" 대답이 있을리 없는 수화기 넘어의 기계를 향해, 한숨섞인 푸념을 내어 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응급실에서 의뢰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로 향했다. 전자차트를 켜고, 환자.. 2020. 8. 16.
전공의 일기. 4-21화. "여보! 여보! 눈떠봐! 여보 눈 떠봐 제발! 여보!" 보호자는 환의가 풀어헤쳐진 환자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통곡했다.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슬프게 울며 환자의 가슴팍에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인턴이 함께 흐느꼈다. 환자의 심박은 여전히 뛰지 않고 있었다. 인공호흡기는 이제는 의미없어진 들숨, 날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보호자분, 심폐소생술 진행중입니다. 환자분의 심장이 기능을 상실했고, 현재 가슴 압박을 통해서만 혈액을 순환 시킬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사망상태입니다. 더 진행할까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이 자리에서 환자의 담당의로서 내가 전해야 할 말이었다. "그만해요. 그만 괴롭히고 내버려 둬요. 그만할래요!" 보호자는 흐느끼며 힘겹게 중단을 요청했다. .. 2020. 8. 12.
전공의 일기. 4-19화 환자의 회복은 더뎠다. 활력징후는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승압제의 사용이 없이는 현재의 혈압을 유지하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조금씩 승압제의 용량을 줄이려 시도를 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환자의 폐를 대신하고 있던 인공호흡기 역시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후 발생한 폐렴과 무기폐가 그 원인이었다. 환자의 폐는 더욱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 덧 2주가 흘러있었다. 매일 같이 환자의 곁을 지키던 보호자도, 생계와 관련된 일들을 중단 할 수 없어 병원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비뇨의학과 전공의 입니다.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CSICU(순환기 외과계 중환자실), 8번 자리에 계신 저희.. 2020. 8. 7.
전공의 일기. 4-18화 오늘도 나는 환자의 옆에 섰다. 여전히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고, 환자는 진정제에 취해 있었다. 승압제를 고용량으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혈압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고, 정규 투석대신 지속적 신대체요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것은 창밖의 날씨였다. 비가 온 뒤 햇볕이 따쓰하게 중환자실로 들이치고 있었다. 충분한 수혈 덕분인지, 하얗게 핏기 없었던 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어제 특별한 사항은 없었나요? 차트상으로는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던데요?" "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고, 오늘 오전에 CRRT(지속적 신대체요법) 시행하면서 잠깐 BP drop(혈압하강) 있었던 것 말고는 혈압도 안정적입니다." "6a lab(오전 6시 혈액검사) 결과는 나왔나요? ABGA(동맥혈가스분석)는 .. 2020. 8. 5.
전공의 일기. 4-17화 중환자실은 여전히 기계장치가 내는 뾰족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울려대는 기계음으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앞장서 환자가 누워있는 창가쪽 8번 자리로 이동했다. 오전임에도 흐린 날씨 때문인지 창가쪽 자리도 어두웠다. 새하얀 환자용 이불을 덮고 인공호흡기를 물고있는 환자의 침대 앞에 섰다. "오늘 오전 lab(혈액검사) 결과 K+(포타슘) 7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신장내과에 바로 연락해서 오전 중으로 투석여부 결정하겠습니다. cardiac(심장 효소검사 및 심전도)은 다행히 큰 문제는 없습니다." "JP는 얼마나 나왔다고? 우상방 100cc, 우하방 40cc, 좌하방 40cc 입니다. 색은 bloody 합니다." "마취과에서는 sedation(진정마취)언제까지 하라고 얘기가 있었나?".. 2020.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