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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나의 중절모 할아버지

전공의 일기. 5-1화

by ASLAN_URO 2020. 8. 16.

당직교대 이후 어김없이 콜폰이 울렸다. 하루에도 백통이 넘는 전화로 실제로는 울리지 않았음에도 울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되는 때가 있었기 때문에, 전화기를 들어 화면을 보았다. 전화기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응급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네, 비뇨의학과 당직입니다"

"응급실 6구역, 000 환자가 의뢰되었습니다. 응급실 6구역, 000 환자가 의뢰되었습니다."

응급실의 호출은 응급의학과의 의뢰 시 자동으로 통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영혼없는 기계음이 반복되고는 자동으로 끊긴다. 

"네, 갑니다. 가요. 그만 전화하세요. 제발"

대답이 있을리 없는 수화기 넘어의 기계를 향해, 한숨섞인 푸념을 내어 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응급실에서 의뢰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로 향했다. 전자차트를 켜고, 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다. 

"이 분 또오셨네. 이번주만 해도 세번은 오신 것 같은데......"

환자는 전립선 암으로, 로봇보조 복강경적 근치적 전립선 적출술을 시행한 환자로, 전립선 암이 이미 정낭을 침범한 상태였기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시행한 병력이 있는 70대 남자였다. 전립선 암이 전립선 주변 장기인 정낭을 침범했을 경우, 인근 조직으로의 미세 침윤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수술로만 암 치료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방사선 치료를 추가적으로 시행하게되고, 항 남성 호르몬제를 투여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 환자는 방사선 치료 종결 후 약 2년의 시간이 흐른 상태였고, 그동안 재발의 근거없이 잘 지내오던 환자였다. 

"어디보자. Hematuria(혈뇨)고, 지난번 응급실 내원했을 때에는 foley(유치 도뇨관, 소변줄)를 넣고, irrigation(세척)을 한 뒤에 색이 괜찮아졌구나. 지난번에는 foley 제거하고 퇴원을 하셨네. lab(혈액검사)은 괜찮고, UA(urine analysis)도 OB(occult blodd) 4+외에는 특별한게 없네. foley 다시 넣고, irrigation 시행하면 되겠다."

차트를 리뷰하며 환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뒤, 응급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응급실은 수 많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여기저기 신음소리와 화가 잔뜩 담긴 고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000 님 계세요?"

 "여기! 여기!"

환자는 응급의학과에서 유치도뇨관을 삽입한 상태였고, 암갈색의 혈뇨가 도뇨관을 통해 배액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비뇨의학과 의사입니다. 이번주 월요일에도 오셨던데 또 오셨네요? 언제부터 혈뇨가 다시 시작되셨어요?"

"어제부터 다시나왔어요. 아주 그냥 죽겠어. 이번주만 벌써 세번째야. 이번에는 피가 나오다가 중간중간 핏 덩어리도 나오고, 오늘 아침부터는 오줌이 나오질 않아서 죽을뻔했어."

"아랫배가 많이 아프셨어요? 소변이 안나온건 얼마나 되셨어요?"

"한 6시간 정도는 된 것 같고, 동네병원 갔더니 자기들은 못한다고 수술한 병원 가라그래서 다시 온거야.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서 죽는줄 알았다니까"

전립선은 방광목 바로 아랫부분에 위치하는 20g 정도, 호두알 크기의 장기이다. 전립선 주변으로는 정자를 저장하는 주머니인 정낭과, 정자의 이동통로인 정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전립선 적출을 시행 할 때, 이러한 인접장기를 모두 제거하고, 방광목과 요도를 다시 이어주게 된다. 때문에, 전립선이 있던 자리에 방사선을 조사하게 되면, 방광의 일부와 요도가 치료범위에 포함되게되며, 이로인해 방광과 요도 점막이 방사선에 의한 변성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 혈관이 점막 위로 드러나 파열되면 혈뇨로 이어진다. 항혈전제를 복용하지 않는 경우라면, 대부분은 금방 멈추게 되지만, 약해진 혈관이 반복적으로 파열되면 이 환자와 같이 지독한 혈뇨에 시달리게 된다. 

"지금 소변색을 보니까 이건 방광안에 피들이 굳으면서 생긴 혈종(Hematoma)이 녹아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제가 소변줄을 조금 더 굵은 것으로 바꾸고, 안에 있는 혈종을 제거 해 드릴게요. 이 정도 색이라면 금방 좋아지실것 같으니, 너무 걱정마세요."

"빨리 좀 해줘. 힘들어"

"이쪽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