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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나의 중절모 할아버지37

전공의 일기. 5-13화 Hematuria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오전 회진을 마무리하고 중절모 할아버지의 병실을 찾았다. 어제와 다르게 밝은 표정으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환자의 미소를 보니, 마음이 놓이는 듯 했다. 어제 수술실에서는 종양 절제부위에서 출혈이 지속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소작술을 한참이나 시행했다는 얘기를 들은터라, 환자의 소변색을 확인했다. 소변줄을 통해 투명한 소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 "이선생 왔어? 아주 좋아. 밥도 맛있어. 오전에 교수님 오셨다 가셨는데 괜찮다고 기다려보라고 하시더라고. 얘기 듣고 나니까 마음이 놓여. 와줘서 고마워." "그래요? 소변색도 좋고, 오늘 아침 혈액검사 결과도 좋더라구요. 다행입니다." "그래도 조직검사 결과는 확인을 해야겠지? 언제쯤 나오는겨? 내일.. 2020. 9. 23.
전공의 일기. 5-12화 Urine clear [카톡] 저녁 10시경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보통 이시간에 들리는 알람은 내일 스케쥴 배정표인 경우가 많았다. 동기에게 내일 수술 일정에 대해 부탁을 해 놓은 것이 있었기에 서둘러 메세지를 확인했다. '일정표가 왔구만. 어디보자..... donor nephrectomy(공여 신장 적출술) 배정이네......' 아쉬운 마음이 컸다. 중절모 할아버지의 수술장에 들어가고 싶었기에 부탁을 해 두었지만, 스케쥴을 짜는 입장에서는 원하는 수술에 배정을 해준다는것이 매우 곤욕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정을 확인하고 있는 중에 동기로 부터 메세지가 왔다. 원하는 수술에 배정해주고 싶었는데 수술 일정이 빡빡해 조절이 어려워, 그 수술에는 넣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해한다고 답장을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2020. 9. 22.
전공의 일기. 5-11화 수술 환자가 입원했다. 내일 예정된 경요도 방광종양 절제술을 위해서였다. 병실 복도에서 만난 환자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내일 예정된 수술은 사실 종양의 완전한 제거가 목적이기 보다는 방광 점막 하층에 위치한 종괴의 성상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병실 복도에서 환자를 마주했다. "이선생, 나왔어." "얼굴이 너무 안좋으세요. 걱정이 많이 되시죠? 최근에 잠을 잘 못주무셨어요?" "어 그려, 방광에 뭐가 또 보인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이 되는거여. 이제 살만큼 살았지만, 이렇게 죽는건 아닌가 무서워." "내일 있을 수술은 수술 자체가 어렵거나 위험하지는 않아요. 전에 내시경실에서 했던 조직검사는 방광 점막에 국한된 검사이기 때문에 이번에 수술방에서 조금 더 깊이 절제해서 이게 어떤 종양인지를 알.. 2020. 9. 21.
전공의 일기. 5-10화 재발 6개월이 지났다. 백발 중절모 할아버지의 존재는 이미 흐릿해져 있었다. 오후 회진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동기로부터 그 환자의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마침 오늘이 할아버지의 정기 검진이 있었던 날이었다. "야, 너 혹시 000 이라는 환자분 알아?" "어, 왜?" "오늘 Cysto(방광내시경) 내가 오후에 담당이었잖아, 그분이 네가 내려와서 검사하게 해달라고 하셔서. 아는 사람인가 했지" "아마도 응급실서부터 내가 쭉 봐오던 환자분이라 그럴거야. 그 할아버지 젠틀하지 않아?" "내가 오늘 검사 담당이 나라고, 그 선생은 수술 들어갔다고 하니까 그냥 수긍하시긴 했어." "검사 결과는? 괜찮았어?" "Radiation Cystitis(방사선 방광염)는 여전히 보이고, 출혈은 없었는데, Bladder(방광.. 2020. 9. 20.
전공의 일기. 5-9화 안도감 불이 꺼진 검사실에 들어섰다. 이미 다른 환자가 검사용 침대에 누워 방광 내시경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독된 내시경 기구가 놓이고, 환자의 회음부를 소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검사가 많네요" "어서오세요, 선생님. 여기 환자분 준비 시작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스테이션에 앉아 검사를 받게 될 환자의 의무기록을 확인했다. 산부인과 환자로 난소와 자궁에 생긴 종양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로 되어있는 환자였다. 여성의 경우 좁은 골반강(pelvic cavity) 내에 자궁과 난소, 방광이 조밀하게 모여있기 때문에 여성 기관에서 발생한 문제가 방광을 침범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때문에 수술 전 CT나 MRI에서 확인이 되지 않는 점막의 표재성 변성이나, 작을 종양을 발생 유.. 2020. 9. 19.
전공의 일기. 5-8화 재회 짙은 공포와 통증, 긴장으로 가득했던 수술실에 평안이 찾아들었다. 시술이 무사히 끝나고 난 뒤, 수술 과정을 기록하는 기록지 작성을 위해, 방사선 차폐벽이 설치된 스테이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 인턴은 환자를 이송용 침대로 옮긴 뒤 회복실로 퇴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턴 쌤, 지금 Urine color(소변색)은 어때요?" "선생님! clear 합니다." "좋습니다. 환자분은 회복실로 나가셨다가, 응급실로 가실예정이에요. 회복실 선생님께 안내부탁드립니다" "넵 알겠습니다." [드르르륵] 수술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이송 침대에 누운 환자가 수술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선생. 이제 다시는 보지말자고! 허허허" "네~ 저도 그렇습니다! 일단 응급실로 가셔서 오늘 밤새 소변색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내일.. 2020. 9. 9.
전공의 일기. 5-7화 소작술 [트드득득 트드드드] 혈종이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혈액이 Toomey syringe(투미 주사기)를 통해 배출되었다. 혈종의 색은 이미 형성된 지 꽤나 긴 시간이 흐른것으로 보였다. 주사기로 흡인된 혈종을 배수구로 흘려 보내고, 주사기에 생리식염수를 가득 채웠다. 주사기를 경성내시경 sheath(내시경이 통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싸개)에 결착하고 주사기를 통해 생리식염수를 다시 방광에 채워넣었다. "환자 분, 괜찮으세요?" "아퍼, 아프니까 빨리 끝내. 말 걸지말어! 참고 있으니까!" "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아우, 빨리혀!" 환자의 통증은 시술 시간에 비례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환자의 인내력이 바닥나기 때문에 서둘러 시술을 이어갔다. [트드드드득 트드드득] 첫 번째 배액이 끝.. 2020. 9. 6.
전공의 일기. 5-6화 방광내시경 방광 내시경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단단한 경성 내시경과, 유연한 연성 내시경. 연성 내시경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위, 대장 내시경과 유사하지만, 총 길이가 조금 더 짧고, 두께가 얇다. 연성 내시경은 검사자가 내시경의 원위부(distal, 카메라 렌즈 끝)을 조작하여 굴곡을 조절 할 수 있기 때문에 방광의 거의 대부분을 관찰 할 수 있고, 통증이 경성 내시경보다는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기구와 결착하여 방광내에서 행해지는 내시경적 시술을 하는데는 제한이 있다. 연성 내시경으로 시행 할 수 있는 시술에는 방광 내 변성조직에 대한 조직검사 및 작은 출혈 부위에 대한 지혈, 5mm 미만의 이물질 제거등이 있다. 경성 내시경의 경우에는 이름 그대로 단단한 구조로 이루어진 쇠 파이프이고, 직경은.. 2020. 9. 3.
전공의 일기. 5-5화 수술실 "선생님 여기 수술장이에요. 인턴선생님이 환자분 모시고 들어오셔서 전화드렸어요" "네, 지금 엘리베이터 앞이에요. 금방 갈께요." 응급실의 혈뇨환자가 수술장으로 입실을 했다는 연락을 받은 뒤, 나는 수술장으로 향했다. 하루에도 열댓번씩 오가는 장소이지만, 매번 수술복을 갈아입는 갱의실을 지나칠때면 긴장을 하게 된다. 하늘색 수술모를 착용하고, 수술장용 마스크로 교체했다. 가운을 캐비넷에 정성스럽게 걸어두곤 환자가 있는 수술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혈종이 다 안빠지면 어쩌지? 입원장을 내야하나? 일단 계획은 혈종 다 제거하고, 피나는 곳은 지지고, 소변줄을 다시 넣고 색을 보다가 괜찮으면 퇴원해서 다음주 초에 외래를 내원하시도록 해야겠다.' "안녕하세요. 아까 응급실에서 뵈었던 비뇨의학과 전공의에요. 긴.. 2020. 8. 25.
전공의 일기. 5-4화. 실랑이. '혈종(hematoma)이 직경 6cm는 되겠다. 어머어마 한데...... 이건 foley(도뇨관)로는 도저히 뺄 수 가 없겠다. 아까 그만큼 drain(배액, 배출) 했는데 이정도 남아있는거면 내시경을 봐야겠다. active bleeding site(활동성 출혈)부위는 CT로는 안보이는데... 작은 혈관 손상인가? woozing bleeding인가? 일단 Scope(내시경)보는게 좋겠어' 환자의 CT를 확인하고, 그사이 검사가 완료된 혈색소 수치를 살펴봤다. Hb(혈색소)은 10.3 이전 검사 시 12 였던것을 감안하면, 출혈이 지속되어 빈혈상태로 진행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cm에 이르는 거대한 혈종은 방광과 요도사이에서 소변의 배출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로인해 방광은 크게 팽만되어 있.. 2020. 8. 23.
전공의 일기. 5-3화 내가 환자를 다시 만난것은 1주가 지난 화요일이었다. 좌측 옆구리 통증을 주소로 내원한 다른 환자를 검진하는 도중, 낯익은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백발에 반 쯤 벗겨진 머리숱, 점잖게 갈색 양복을 입고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비뇨기과 선생님한테 전화 좀 해줘. 아파서 죽겄어. 전에도 그 선생님이 봤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은 선생님한테 전화 해줘." "그 선생님 누구요? 연락하고 오신거에요?" 간호사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연락을 하고 와. 그냥 그 선생님이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전화하면 와서 봐줄꺼야" "환자분 저희가 오신 순서하고, 응급한 정도에 따라서 담당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거에요.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전화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지난번에 오신.. 2020. 8. 21.
전공의 일기. 5-2화 "여기 누워보세요. 머리는 저쪽으로 두시고 누우시면 됩니다" "아휴 죽겠다. 빨리좀 해줘. 힘들어" 환자의 하복부는 팽만이 심한 상태였고, 작은 압력에도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응급의학과에서 삽입한 도뇨관(foley catheter)는 16fr.(도뇨관의 두께를 나타내는 단위)로 현재 환자의 상태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두께였다. "환자분 지금 들어가있는 소변줄을 제거하고, 조금 더 두꺼운 소변줄로 교체하겠습니다. 그래야 방광안에 있는 피떡(혈종, Hematoma)을 제거 할 수 있어요.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참아주세요. 빼겠습니다!" 도뇨관 끝에는 balloon(풍선)이 있는데, 방광에 도뇨관이 삽입이 되면 풍선을 부풀려 소변줄이 방광압으로 인해 빠져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도뇨관을 제거할 .. 2020.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