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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

전공의 일기. 3-1화

by ASLAN_URO 2020. 7. 18.

오늘은 말기암 환자분이 임종과정에 들어선 상황을 마주했다.

 

 "언제쯤 가족들을 오라고 하면 될까요?"

 "정확한 시기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이번 주를 넘기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 오늘도 승압제를 사용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계신 상황입니다."

 

 말기암 환자의 보호자와 면담을 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생명을 감히 예측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거니와 나의 판단으로 인해 가족들이 입을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함부로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환자는 전립선 암이 발견된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항 호르몬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로 온 몸의 뼈, 간, 척수, 뇌로의 전이가 급속하게 진행된 상황이었다. 전신상태를 고려하면, 항암치료를 시행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질병의 진행은 지속되었고, 뇌로의 전이가 악화되면서 자발적인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식사는 물론 물조차 들으키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다. 척수로의 전이는 환자의 하지가 마비되는 상황으로 연결됐고, 스스로는 소변조차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뼈가 녹아내리는 통증으로 밤새 앓는 소리를 내는 일이 잦아져, 지속주입 마약성 진통제를 통해 통증을 조절하는 중이었으나 효과가 미미한 상황이었다.

 

 환자의 상황처럼 전립선 암이 진단되고 불과 2년이라는 시간동안 급속히 진행되어 임종 과정에 놓이게 되는 상황은 매우 드물다. 이로인해 가족들은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의사는 말기단계에 들어선 환자와 보호자에게 임종단계에 들어설 경우 생명연장을 위한 응급처치와 보존적 치료를 어디까지 진행 할 지 결정하도록 한다. 이 때 환자와 보호자들이 결정한 것은 심정지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할 지 여부, 인공호흡기를 적용할 지 여부, 혈액투석을 진행할 지 여부, 승압제를 사용할 지 여부 등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처치들을 통해 본인의 생명을 연장할지를 결정하는 환자의 명확한 의사 표현이다. 최근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이 강화되면서 환자 본인의 의사표현이 가장 중요하며, 만약 환자가 스스로 의사표현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질병이 진행되기 전, 가족들에게 말해왔던 생명연장에 대한 환자의 의사표현을 바탕으로 모든 가족들이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질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뇌로의 전이가 있기 전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병원에 전달해왔고, 이미 문서화가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승압제는 이미 최고 농도에 도달해 있었다. 승압제란 말 그대로, 말초의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일시적으로 유지하게 하는데, 응급시에 타 장기가 정상상황에 놓이게 될 때 까지, 일시적으로 혈압을 유지시키는 용도이지, 근본적이 치료방법은 될 수 없다. 승압제 사용이 지속될 수 록 말초혈관으로의 혈류가 감소하면서 손, 발 끝의 허혈성 손상이 발생하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혈류의 호전이 없으면, 괴사가 발생하여 나중에 환자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수 족지를 절제해야하는 상황이 발생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재 상태에서 나는 하루를 넘기기 힘들것이라 판단했다. 가족들 또한 이 사실을 애써 인정하며 통증없이 환자가 임종을 맞이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늘의 나의 미션이다. 적절한 약물 조절로 통증없이,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는 시간에, 환자분을 놓아드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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