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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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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 5-5화 수술실 "선생님 여기 수술장이에요. 인턴선생님이 환자분 모시고 들어오셔서 전화드렸어요" "네, 지금 엘리베이터 앞이에요. 금방 갈께요." 응급실의 혈뇨환자가 수술장으로 입실을 했다는 연락을 받은 뒤, 나는 수술장으로 향했다. 하루에도 열댓번씩 오가는 장소이지만, 매번 수술복을 갈아입는 갱의실을 지나칠때면 긴장을 하게 된다. 하늘색 수술모를 착용하고, 수술장용 마스크로 교체했다. 가운을 캐비넷에 정성스럽게 걸어두곤 환자가 있는 수술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혈종이 다 안빠지면 어쩌지? 입원장을 내야하나? 일단 계획은 혈종 다 제거하고, 피나는 곳은 지지고, 소변줄을 다시 넣고 색을 보다가 괜찮으면 퇴원해서 다음주 초에 외래를 내원하시도록 해야겠다.' "안녕하세요. 아까 응급실에서 뵈었던 비뇨의학과 전공의에요. 긴..
전공의 일기. 5-4화. 실랑이. '혈종(hematoma)이 직경 6cm는 되겠다. 어머어마 한데...... 이건 foley(도뇨관)로는 도저히 뺄 수 가 없겠다. 아까 그만큼 drain(배액, 배출) 했는데 이정도 남아있는거면 내시경을 봐야겠다. active bleeding site(활동성 출혈)부위는 CT로는 안보이는데... 작은 혈관 손상인가? woozing bleeding인가? 일단 Scope(내시경)보는게 좋겠어' 환자의 CT를 확인하고, 그사이 검사가 완료된 혈색소 수치를 살펴봤다. Hb(혈색소)은 10.3 이전 검사 시 12 였던것을 감안하면, 출혈이 지속되어 빈혈상태로 진행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cm에 이르는 거대한 혈종은 방광과 요도사이에서 소변의 배출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로인해 방광은 크게 팽만되어 있..
전공의 일기. 5-3화 내가 환자를 다시 만난것은 1주가 지난 화요일이었다. 좌측 옆구리 통증을 주소로 내원한 다른 환자를 검진하는 도중, 낯익은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백발에 반 쯤 벗겨진 머리숱, 점잖게 갈색 양복을 입고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비뇨기과 선생님한테 전화 좀 해줘. 아파서 죽겄어. 전에도 그 선생님이 봤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은 선생님한테 전화 해줘." "그 선생님 누구요? 연락하고 오신거에요?" 간호사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연락을 하고 와. 그냥 그 선생님이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전화하면 와서 봐줄꺼야" "환자분 저희가 오신 순서하고, 응급한 정도에 따라서 담당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거에요.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전화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지난번에 오신..
전공의 일기. 5-2화 "여기 누워보세요. 머리는 저쪽으로 두시고 누우시면 됩니다" "아휴 죽겠다. 빨리좀 해줘. 힘들어" 환자의 하복부는 팽만이 심한 상태였고, 작은 압력에도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응급의학과에서 삽입한 도뇨관(foley catheter)는 16fr.(도뇨관의 두께를 나타내는 단위)로 현재 환자의 상태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두께였다. "환자분 지금 들어가있는 소변줄을 제거하고, 조금 더 두꺼운 소변줄로 교체하겠습니다. 그래야 방광안에 있는 피떡(혈종, Hematoma)을 제거 할 수 있어요.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참아주세요. 빼겠습니다!" 도뇨관 끝에는 balloon(풍선)이 있는데, 방광에 도뇨관이 삽입이 되면 풍선을 부풀려 소변줄이 방광압으로 인해 빠져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도뇨관을 제거할 ..
전공의 일기. 5-1화 당직교대 이후 어김없이 콜폰이 울렸다. 하루에도 백통이 넘는 전화로 실제로는 울리지 않았음에도 울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되는 때가 있었기 때문에, 전화기를 들어 화면을 보았다. 전화기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응급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네, 비뇨의학과 당직입니다" "응급실 6구역, 000 환자가 의뢰되었습니다. 응급실 6구역, 000 환자가 의뢰되었습니다." 응급실의 호출은 응급의학과의 의뢰 시 자동으로 통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영혼없는 기계음이 반복되고는 자동으로 끊긴다. "네, 갑니다. 가요. 그만 전화하세요. 제발" 대답이 있을리 없는 수화기 넘어의 기계를 향해, 한숨섞인 푸념을 내어 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응급실에서 의뢰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로 향했다. 전자차트를 켜고, 환자..
전공의 일기. 4-21화. "여보! 여보! 눈떠봐! 여보 눈 떠봐 제발! 여보!" 보호자는 환의가 풀어헤쳐진 환자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통곡했다.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슬프게 울며 환자의 가슴팍에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인턴이 함께 흐느꼈다. 환자의 심박은 여전히 뛰지 않고 있었다. 인공호흡기는 이제는 의미없어진 들숨, 날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보호자분, 심폐소생술 진행중입니다. 환자분의 심장이 기능을 상실했고, 현재 가슴 압박을 통해서만 혈액을 순환 시킬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사망상태입니다. 더 진행할까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이 자리에서 환자의 담당의로서 내가 전해야 할 말이었다. "그만해요. 그만 괴롭히고 내버려 둬요. 그만할래요!" 보호자는 흐느끼며 힘겹게 중단을 요청했다. ..
전공의 일기. 4-20화 "보호자 분 병원으로 오셔야겠습니다. 환자분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예? 어떻게 안좋아요? 이제 끝인가요? 얼마나 버틸 수 있나요?" 환자와 이별하기 하루 전 저녁이었다. 승압제에 대한 환자의 반응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고, 혈압은 강릉 앞바다 파도처럼 너울지게 그려지고 있었다. 이미 장시간에 걸친 승압제 사용으로 환자의 양측 손가락과 발가락의 괴사는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동맥혈 가스분석 결과도 환자가 더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기말 양압환기 압력을 높여가며, 폐포에서 폐를 지나는 동맥으로 산소를 우겨넣고 있는 상황이지만, 환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며, 심박 수는 거칠게 상승해 나아갔다. "지금 출발하시면 얼마나 걸리실까요?" "한시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
전공의 일기. 4-19화 환자의 회복은 더뎠다. 활력징후는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승압제의 사용이 없이는 현재의 혈압을 유지하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조금씩 승압제의 용량을 줄이려 시도를 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환자의 폐를 대신하고 있던 인공호흡기 역시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후 발생한 폐렴과 무기폐가 그 원인이었다. 환자의 폐는 더욱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 덧 2주가 흘러있었다. 매일 같이 환자의 곁을 지키던 보호자도, 생계와 관련된 일들을 중단 할 수 없어 병원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비뇨의학과 전공의 입니다.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CSICU(순환기 외과계 중환자실), 8번 자리에 계신 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