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긴 밤이 지났다. 서울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답답함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늦은 새벽까지 침대를 벗어나 방안을 서성이다가 다시 자리에 눕는 상황이 반복됐다.
새로 맞이한 아침. 강릉에서의 일상은 전과 다름없이 흘러갔지만 나의 하루는 어제의 연속이었다.
지난밤 할아버지의 상태는 어떻게 변했고 가족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오전 회진을 마치고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형. 어떻게 됐어?"
"일단은 어제랑 큰 변화는 없어. 승압제도 그대로 유지 중이고. 아침 CXR(chest X-ray, 흉부 방사선 촬영)에서 effusion(흉막삼출)이 조금 더 늘어났다."
"mental은 여전하지?"
"쭉 변함없어. Intensive care(중환자 집중치료)를 하는 게 좋겠는데 오늘 아침에도 알아보니까 ICU(중환자실)는 입실기준에 해당 안된다고 하고, 자리도 없는 상황이고......"
"계속 처치실에서 계셔야겠네...... 가족들이 어서 결정을 내려줘야 한시름 놓을 것 같은데......"
"아직도 의견이 합쳐지지가 않나봐. 배우자분 의사가 너무 확고하셔서 아들들도 지금 엄청나게 고민하고 계셔."
"큰아들이 와계신건가?"
"응 두 분 다 와계시지. 배우자분은 몸이 좋지 않으셔서 오늘 오전에 댁으로 가셨고."
"진짜 큰일이다. 어째 약들이 반응이 없냐......"
"야 일단 전화 끊어봐 콜 계속 들어온다. 나중에 통화하자"
"오키 고마워!"
언제나 그렇듯,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화통화를 마쳤다.
나는 냉정하게 할아버지의 상태를 다시 살펴보려 했다. 의사로서 내가 판단하기에 할아버지는 정말 소생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어떤 것이 할아버지를 조금 더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일까? 내가 할아버지의 담당의였다면 가족들에게 어떤 설명을 했어야 했을까?
'할아버지는 지금 패혈증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이미 병과의 싸움에서 졌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을 제외하면 어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상태야. 약물이 아니었다면 할아버지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을 거야. 그래 알겠어. 나도 충분히 알아. 모든 지표가 할아버지의 끝을 가리키고 있어. 전부 알지만,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정말 소생할 가능성이 없을까? 정말 1푼이라도 가능성이 없는 거야?'
나는 의사로서 이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깨어날 것이라는 기적이라도 믿고 싶었다.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위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며칠의 시간이 흘렀고, 할아버지의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할아버지의 바람처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위한 어떠한 처치도 시행하지 않는데 가족들이 동의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처치실에서 다시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가족들이 모여 있을 수 있는 오롯한 할아버지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강릉에서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병동으로 향했다. 마음이 급했던 터라 가운을 챙겨 입지도 못한 상태였다.
닫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여있던 가족들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제야 내가 의사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비뇨의학과 전공의입니다. 할아버지 상태가 걱정되어서 바로 찾아오느라 복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아! 이선생님?"
"아 네. 큰 아드님이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강릉으로 파견을 가 있는 동안이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별말씀을요...... 신경을 엄청 써 주신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강릉에서도 계속 저희 아버지 상태를 챙겨주셨다고 담당 선생님을 통해 얘기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퇴원하실 때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는데...... 지금 이렇게 의식이 없는 채로 다시 만나게 되어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퇴원하시고는 이선생님 말씀을 참 많이 하셨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이선생님께 많이 의지를 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식사 한번 대접해야 하겠다고 병원으로 수차례 전화를 하셨는데 연결이 안 되어서 많이 서운해하셨습니다. 병원에 다시 입원하실 때에도 입원하면 이선생님이 봐줄 거라며 걱정 말라고 저희를 안심시키셨는데 선생님께서 강릉으로 가셨다는 소식에 실망이 크셨어요...... 지금도 말씀은 못하시는 상황이지만 이선생님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계실 겁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호자와의 대화를 끝내고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할아버지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 눈은 감은채 우측으로 돌아 뉘어져 있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승압제의 영향 탓인지 손끝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손마디는 단단하게 굳어져있었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건강 잘 챙기셔서 다시 보지 말자고 해놓고 이렇게 사람 놀라게 하시면 어떻게 해요. 할머니 걱정된다고 수술받으셔놓고는 할머니가 더 걱정하시게 되었잖아요...... 눈 뜨셔요. 이제 저 왔으니까 일어나셔도 돼요. 저 없다고 투정 부리시는 거면 그만하시고 일어나세요. 제가 더 잘할게요. 네?'
대답이 있을 리 없는 할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한참 동안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일들을 기억하려 했다.
응급실에서 나를 애타게 찾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은 너무나 생생했다. 점잖은 갈색 양복에 중절모 차림. 내려진 지퍼 사이로 툭하고 삐져나온 도뇨관과 암적색의 혈뇨. 엄살이 심했던 할아버지의 사람 좋은 웃음. 다시 보지 말자던 수차례의 약속들. 웃으며 맞이한 행복한 이별의 순간들.
따뜻했던 할아버지의 온기는 이제 반쯤 식어 부여잡은 나의 손끝을 시리게 했다. 나는 의사로서 실패했다. 밀려드는 죄책감에 의도치 않게 시야가 흐려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가족들 중 젊어 보이는 여성이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나는 잡고 있던 할아버지의 손을 침상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내일 또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병실을 나섰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흐려진 시야가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삶의 끝. 그 경계에서 언제나 나는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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