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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일기./나의 중절모 할아버지

전공의 일기. 5-34

by ASLAN_URO 2021. 1. 31.

"오늘은 특별한 이벤트 없었어? 괜찮은 거야?"

 

"뭐 일단 승압제는 끊었으니까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이겠지?"

 

"오 끊었어? 바이탈(Vital sign) 괜찮아? Vent(ventilator, 인공호흡기)는?

 

"아직. 오늘 승압제 끊었는데, 그럭저럭 잘 견뎌내고 계셔. 문제는 effusion(pleural effusion, 흉막삼출)이 아직도 조절이 안 되는 상태라 아직 Vent는 못 뗄 것 같아"

 

"오늘이 4일째인가? 이제 Cx.(culture, 배양검사) 나올 때 되지 않았어?"

 

"이제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 미확정 상태라......"

 

"궁금하네...... 인공호흡기만 떼면 이제 올라오실 수 있겠는데?"

 

"Septic condition(패혈증 상태)에 들어가면서 계속 sedative(진정제) 걸어둔 상태니까 의식도 좀 봐야 하고......"

 

"Brain work up(뇌 검사) 계획은 있고?"

 

"NR(신경과)에서는 Image w/u(영상의학 검사) 시행하고, brain EEG(뇌파검사) 해보자고 답변받아서 오늘 검사할 거야"

 

"별 문제없었으면 좋겠다. 제발"

 

"괜찮으시겠지. 나중에 전화하자"

 

"전화 줘서 고마워 형."

 

중환자실로 옮겨졌던 할아버지는 점차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패혈증 상태에서 할아버지의 혈압을 지탱해주던 승압제는 이제 투여가 중단되었다. 아직 불안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승압제의 투여가 없어도 어느 정도 안정된 수축기 혈압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흉강 내의 삼출액량이 줄어들지 않아 자발 호흡은 어려운 상태였고, 여전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패혈증을 일으킨 원인 균주에 대한 배양검사는 아직 미확정 상태였기에 아직 광범위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었다.

 

이제 호흡만 회복된다면 할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올라오시게 될 것이다. 자발 호흡과 의식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약물 투여 중으로 정확한 평가에 제한이 있었다. 

 

나흘 뒤 서울에서 연락을 받았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뇌병변은 관찰되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보통 패혈증 상태에서 혈압이 떨어지게 되면, 일시적으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게 되고, 이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면 뇌에 영구적인 허혈성 손상을 입게 된다. 때문에 의식 수준을 바탕으로 뇌 손상 정도를 추정하고, 영상의학적 검사를 통해 뇌손상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패혈증 쇼크가 발생하기 전 의식 수준이 비교적 괜찮았던 터라 큰 이상은 없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었다. 

 

패혈증의 원인 확인을 위한 배양검사 결과가 확정되었다. 다행히 항생제 내성균주에 의한 감염은 아니었지만, 진균 감염이 동반되어 있었다. 현재 사용 중인 항생제를 한 단계 낮추어 사용하고, 진균에 대한 새로운 항생제가 추가되었다. 전신 염증 상태를 확인하는 혈액검사 지표도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흉막삼출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지만, 배액관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시술을 통해 기능이 이전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원인도 알았고, 처치는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인공호흡기를 벗어내고 일반병실로의 전동이 가능할 상황이었다. 

https://unsplash.com/photos/6pcGTJDuf6M

할아버지가 중환자실로 내려간 지 2주가 지났고, 일반병실로 전동 되었다. 

 

흉막삼출이 줄어들어 인공호흡기는 제거했고, 자발 호흡은 회복된 상태였다. 혈액검사 결과 또한 호전되는 양상이었다. 

뇌 손상이 우려되어 시행한 검사 또한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는 상태였지만, 아직 할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병실로 오셨다"

 

"괜찮으신 거야? 의식은?"

 

"의식만 없고 나머지는 다 정상적이야."

 

"Sedative 끊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여하튼 고생 많았소. 다른 건 문제없는 거지?"

 

"내가 문제다. 내가 문제야. 이번 달은 왜 이렇게 힘든 거냐"

 

"다음 달에 괜찮겠지. 좀 쉬셔"

 

"오늘 또 당직이다. 무튼 변동사항 있으면 알려줄게"

 

"고마워"

 

아직 의식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말에 마음이 가볍지는 못했지만, 아직 체내에 남아있는 진정제의 영향일 것이라 생각하고 걱정을 덜어냈다. 

 

'일주 뒤면 본원으로 복귀인데...... 그때까지 지금처럼만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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