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념.

금연. [금연을 결심하고, 담배 세 갑을 샀다. 1]

by ASLAN_URO 2020. 7. 24.

 벌써 5번째 시도이다. 매번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삼일도 되지 않아 실패했다. 새해 종소리를 들으며 다짐을 해보길 수차례였으나, 담배 연기가 주는 마음의 평온을 핑계삼아 다시 담배를 시작했었다. 새벽 출근 길, 차에서 태우는 담배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이 누리는 자유였고, 연기를 핑계로 창문을 열고 달리면 그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끊으라는 아내의 걱정스런 요청도, 흡연이 내게 주는 평안함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어젯저녁 아내와 아이 둘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았다. 서로를 간지르며 깔깔웃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문득 오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금연하는 것이 오래사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부터는 해방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구글 이미지 검색

 

 처음 담배를 시작한 건, 연구원으로 일할 때였다. 나는 술도 잘 못마시고, 담배도 태우지 않는 27세 청년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재미없는 놈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재미없는 놈이었다. 그해 겨울 대학 동기가 내 연구실로 입사했다. 회식이 생겼다.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주변의 남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다. 테이블엔 나와, 여자 연구원들만 남았다. 분위기가 어색해서 다들 어디갔는지 찾아보겠다며 자리를 나섰다. 동료들과 교수님이 가게 앞 전봇대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에서 담뱃불이 반딧불이 처럼 빛났다. 나는 담배구름을 뚫고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교수님이 나를 불렀다.

 

"이선생 이리와봐."

"네, 교수님."

"자네는 너무 성실하고 다 좋은데, 사람이 재미가 없어. 남자가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좀 하고 그래야지 뭐야 재미없게."

"하하. 그렇습니까 교수님? 저도 한 대 주십시요"

"엥? 담배피울라고? 됐어 농담이야. 한번 시작하면 절대 못 끊어. 농담이니까 시작하지 말어"

"아닙니다. 사실 피우다가 끊었던 참인데, 다시 피우고 싶네요. 한대만 주십시오"

"원래 피웠었어? 하하 난 또 처음 피우는 건 줄 알았네. 여깄어"

"감사합니다."

 

디스 플러스였다. 노란색 담배갑엔 검은 색 고래가 헤엄치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사실 담배를 피우다가 끊었다는 것은, 이 정도는 나도 할 줄 알아라고 표현하기 위한 치기어린 거짓말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시퍼런 불꽃이 담배에 닿았고, 작게 숨을 빨아들였다. 

 

"콜록 콜록"

"엥? 못피는거 아냐? 처음이지?"

"아.. 아닙니다. 간만에 피우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괜찮습니다."

주변 동료들이 비웃었다. 나는 나에게 쏟아진 관심이 거북스러워 화제를 돌렸다.

 

"교수님 이번에 신규 임용이 있을거라는데요?" 

"어, 조교수 자리가 하나 날 것 같아. 관심있어?"

"관심이야 있죠. 하지만 아직 논문이 마무리가 안되어서......"

 

옆에 있던 선배 연구원이 끼어들었다. 풍류를 즐길줄 알기로 유명한 선배였다. 연구 실적도 좋고 사회성도 원만하고, 뭐하나 빠질게 없던 선배였지만, 매번 임용에서 고배를 마셨다.

 

"교수님 저는 어떻습니까? 저는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에이 당연히 자네부터 생각하고 있었지. 풍류를 즐길줄 아는 남자가 매력적이라고. 허허허"

"임용만 시켜주시면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이거 꼭 되야겠는걸?"

 

교수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담배는 타들어 갔고, 시뻘건 담뱃불은 어느새 필터 앞에 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