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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헬렌 니어링

by ASLAN_URO 2020. 7. 18.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으면서 죽음의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헬렌과 스콧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먼저 얘기하고 싶다. 이 글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리라 믿는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두 사람의 일상적인 삶과 특이할 만한 사건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헬렌 니어링은 스콧 니어링을 만나기 전까지 지금은 세계의 성인이 된 크리슈나무르티와 연인 관계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며 자라온 헬렌에게 이는 인생의 전반부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 계기였고 이로 인해 모험을 좋아하는 천성을 찾게 된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당시 젊은 인도의 학자였다. 모임에서 헬렌을 만나고 헬렌과 사랑에 빠져 그가 헬렌을 버리기 전까지 그는 헬렌의 정신적인 면에 그리고 삶의 방식에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헬렌의 모험적인 성격은 음악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바램을 뒤로 한 채 크리슈나무르티에게로 향하는 배에 탐으로서 더 강화된다. 헬렌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크리슈나무르티가 속해있는 신지학회의 일원이 되어 호주 네덜란드 미국 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일을 한다. 헬렌이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버림을 받고 난 뒤 그녀는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다. 헬렌의 일생이 비극적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으나 그 일은 스콧을 만나기 위한 준비단계였음을 알면 생각은 달라진다.

 

 

스콧 니어링은 젊은 학자로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그런 그는 너무나 혁명적이고 당시의 정부에 반하는 언질과 지배계층에 대한 비난의 발언으로 교수직에서 파면당한다. 이는 스콧 니어링이 양심적인 학자이면 타협할 줄 모르는 강인한 주관을 갖고 있었음을 표현한다. 이후에 스콧 니어링은 학교를 옮겨 다시 강의를 했지만 그의 진한 색채로 인해 다시 파면당하고 어려움에 처한다. 헬렌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스콧을 찾게되고 그 과정에서 스콧과 헬렌은 사랑에 빠진다. 스콧과 헬렌이 만난 것은 스콧이 45세 때 이며 이 둘은 스콧의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동거를 이어간다. 당시의 미국의 정서로 처녀의 동거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우려를 갖고 있었으나 헬렌의 진보적인 성향은 이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었다. 책의 전반부에 걸쳐 헬렌과 스콧은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동료로, 친구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해 온 것 같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헬렌과 미국의 자유주의에 맞서 대항하는 젊고 박식한 학자 스콧의 만남은 사실 어떠한 개연성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서 생겨난 유대의 끈과 서로에 대한 사랑은 내가 꿈꿔온 완벽한 사랑과 일치한다. 헬렌과 스콧은 강력한 정신적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헬렌은 스콧을 자신의 남편이자 시대의 지성이며 현자라고 표현했으며 스콧 역시 책의 마지막 부분 즉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인터뷰에서 톨스토이와 간디 그리고 헬렌을 지목한 부분에서 그들의 사랑 속에는 강한 정신적 유대관계의 끈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들은 스콧이 강단에서 물러난 뒤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생활한 듯 보였다. 뉴욕의 작은 집에서 부유하지 못하게 생활을 했으며 수입은 책에서 나오는 인세와 스콧의 몇 안되는 강연료가 전부였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환경을 비관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채우기 위해 항상 전진하는 대단한 기업의 기업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졌다. 헬렌은 스콧의 비서이자 아내로 또 친구이자 동반자로 남아있길 원했고 실제로 그러한 듯 하다. 스콧은 헬렌에게도 정치적인 혹은 사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 일조했다. 반세기를 함께한 부부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헬렌이 그를 진심으로 존경을 한 점을 반영한다면 이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스콧은 미국의 극단적인 자유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었고 전쟁과 기아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스콧은 사회주의 학자로서 짙은 색채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헬렌이 물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콧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공장노동자의 생활을 헬렌이 하기를 원했으면 그곳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리라 생각했다. 헬렌은 스콧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공장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스콧은 헬렌에게 시골로 옮겨갈 것을 제안한다. 시골로의 이동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많은 의미를 안겨준다. 자유주의의 표상인 뉴욕으로부터의 탈출, 각박한 일상과 쪼들리는 삶으로 부터의 해방,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로의 이동. 니어링 부부는 자신들의 수준에 맞게 농장을 구입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메이플 시럽을 제조하는 일, 돌로 집을 쌓는 일, 헛간을 만드는 일, 담을 쌓는 일, 땔 감을 구하고 나르는 일, 메이플 시럽을 제조하기 위해 나무를 재배하는 일등 얼핏 보면 단순한 농부의 일상으로 보이는 이 일들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매개체였다. 그들은 소소한 일상에서 자유를 느끼고 행복을 느꼈다. 그들은 채식생활을 했다. 스콧은 훗날 자신의 건강의 비결은 소식과 일, 요가 그리고 채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채식을 권장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연구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난로 앞에 앉아 서로 책을 읽었으며 지속적으로 글을 썼다. 스콧은 자신의 세계정세에 대한 견해를 글로 표현했으며 메이플 시럽의 제조법과 농장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저술했다. 부부는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저술하여 세상에 내어 놓았고 이는 이들 부부의 삶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되었다. 스콧은 여러 곳을 다니며 강연을 했지만 이득을 취하려하지 않았고 본래의 가치 외에 어떠한 이윤도 남기지 않았다. 스콧은 자신의 여비를 털어서 강연을 하러다녔으며 그의 급진적인 성향에 겁이 난 사람들이 그를 푸대접하여도 그는 개의치 않아했다. 이 대목에서 스콧의 그릇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다. 스콧은 헬렌과 결혼하기 전에 전 처 사이에서 2남을 두고 있었다. 둘째와는 다르게 첫째는 스콧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표방했다(정치적 그리고 사상적인 차이 때문에 스콧과 전 처가 헤어지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스콧을 비난 했고 아버지의 뜻에 반하여 사상적인 옷을 바꿔 입음으로 서로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하였다. 아들이 강연을 갔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을 때 아들의 장례식에 불참하는 내용의 편지를 둘째에게 보냈는데 이 편지의 내용가운데 잘 드러나 있다.

 

 

 

스콧과 니어링의 책 『조화로운 삶』에 이어 『조화로운 삶의 지속』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니어링 부부의 농장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 들었다. 이들은 부담스러워 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손님들은 환영하게 되고 자신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널리 알려 이와같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주었다. 한 해 천오백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보아 한 달에 백여명 이상이 방문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헬렌과 스콧부부의 보금자리에도 미국 자유주의의 승자들이 영역을 침범하여 왔다. 값비싼 외제와 수 많은 스키어들이 그들 보금자리의 안락함을 위협했고 이들로 인해 니어링 부부는 이사를 결심한다. 비슷한 조건의 다른 보금자리로 옮겨온 이들은 또 다시 담을 쌓고 집을 지으며 농사를 일구었다. 전의 보금자리를 지을 때와는 다르게 많이 노쇠함을 걱정하는 헬렌에게 스콧은 용기를 주었고 부부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꾸며나갔다. 농사를 지속적으로 지었고 손님들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스콧은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으로 추대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강연을 듣기위해 모여들었다. 스콧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자연을 사랑하고 미국의 자유주의를 혐오했으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동적이었다.

 

 

 

책은 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랑을 자랑하고 있다. 생로병사의 인간학이 삶과 죽음을 다루는 과목이었기에 이 부분에 관심을 집중하고 연관시키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이유를 분석해 본 나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단단한 끈으로 사랑을 생각해 냈다. 니어링 부부의 삶에서 내가 간과한 것은 바로 사랑이다. 두 사람을 정신적으로 고도의 수준에 이르렀고 이를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사랑의 참모습이며 이들을 고도의 경지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헬렌은 스콧 니어링을 존경하고 있었고 스콧도 같았다. 결국에 스콧이 자의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를 수용하는 헬렌의 감정과 정신적 상태변화를 주의깊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은 죽음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았고 스콧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혹은 그 이전부터 죽음의 본질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하고 서로 공유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죽음은 마치 바다위의 수평선 같아서 항구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배가 지평선 너머로 기울면 아쉬워하며 배가 사라졌음을 한탄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평선 까지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인용구가 인상 깊었다. 같은 맥락에서 모리스 메털링크가 1913년에 쓴 책 『영원한 미래』에는 “나는 바닷가에 서 있다. 내 쪽에 있는 배가 산들바람에 흰 돛을 펼치고 푸른 바다로 나아간다. 그 배는 아름다움과 힘의 상징이다. 나는 서서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맞닿는 곳에서 배가 마침내 한 조각 구름이 될 때까지 바라본다. 저기다. 배가 가버렸다. 그러나 내 쪽의 누군가가 말한다. '어디로 갔지?' 우리가 보기에는 그것이 전부이다. 배는 우리 쪽을 떠나갔을 때의 돛대, 선체, 크기 그대로 이다, 목적지까지 온전하게 짐을 싣고 항해할 수 있었다. 배의 크기가 작아진 것은 우리 때문이지, 배가 그런 것이 아니다. '저기 봐! 가 사라졌다!'고 당신이 외치는 바로 그 순간. '저기 봐! 배가 나타났다!' 하며 다른 쪽에서는 기쁜 탄성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218” 라는 글로 보충한다. 헬렌과 스콧은 모든 결정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와 애정이 있었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사랑이 있었다. 나는 이 글의 머리에 내가 사랑하는 연인에게로 보내는 편지를 적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든 진심을 포함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스콧의 진심어린 충고와 헬렌의 태도에서 모든 것은 완벽하게 맞았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스콧이 자신의 죽음을 자의적으로 끝내려고 할 때 헬렌은 완벽하게 스콧을 이해하려 했고 이를 수긍했다. 그들은 사랑으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들 사이에서는 완벽하게 의견이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으며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책의 인용구에는 죽음이 새로운 탄생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를 "New Born"에서 찾아내었다.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으로의 ‘태어남’은 전혀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고 이 세계에서 삶은 죽음이라는 새로운 ‘태어남’의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헬렌은 스스로가 영매로서 작용하는 법을 터득했지만 스콧과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스콧을 자유로운 상태로 놓아주기 위함이 있었다. 스콧은 100세의 생일에 단식을 선언한다. 헬렌은 받아들였고 스콧에게 생명 부지를 위한 최소의 음료만을 제공했으나 스콧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마저 거부하게 된다. 스콧은 자신의 죽음 뒤에 올 혼란을 생전에 정리하려 하였고 모든 절차를 자신이 선택한 루트로 진행하기를 원했다. 어떤 종교적 인사가 참여해서도 안되며 장례는 간소하게 화장으로 치러줄 것을 주문했다. 화장 후에는 자신의 농장에 뿌려지기를 원했다. 헬렌은 아메리카 토착민의 글을 읊조렸고 스콧은 그 가운데 편안히 잠들었다. 스콧의 죽음은 자신이 선택한 가운데 가장 명예롭고 편안한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다. 유교문화권에서 죽음은 혼과 연관되어 귀신 등으로 표방되는 공포의 원천으로 여겨져 왔다. 물론 모든 유교문화권 국가가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적어도 내가 자라온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해당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은 선택적이다. 그것이 신이든 자의든 말이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자의에 의한 죽음을 ‘신체발부수지부모’에 어긋나는 굉장히 부도덕한 일로 비추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콧의 죽음을 자살의 범주에 넣게 되었을 때 발생될 수 있는 안개들을 혹은 먼지들을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행여나 이 책에서 그리는 스콧의 자살이 아름답게 비추어 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스콧의 죽음이 자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동의를 얻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낙태가 횡횡하는 생명경시 풍조가 가득한 이 사회에서 생사학을 전파하기 위한 예로 사용될 때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이다) 스콧의 단식 결정과정에서 헬렌은 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존중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헬렌과 스콧은 사랑이라는 강력한 유대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죽음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의의를 정리하여 스콧의 죽음이 명예로운 죽음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스콧과 헬렌은 죽음은 또 다른 탄생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사실 죽음의 본질적 두려움은 다시 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시 볼 수 없음과 끝이라는 두 요인은 죽음을 기피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생과 반대되는 배척해야 할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니어링 부부와 같이 인식의 전환을 거친다면 그리고 죽음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여기게 될 것이고 이는 자궁에서 벗어나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은 삶이 ‘살다’와 ‘죽다’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아직까지 그들은 삶은 연장선상에 있고 진행중이며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인상깊었던 구절>

 

대다수 사람들은 창조와 개혁에 대해 언제나 조심스럽고 망설이며,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개혁자, 이미 알려진 길을 벗어나 가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일 수 밖에 없고 끊임없는 반대와 비난, 질시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창조적 사고와 행위에 따르는 희열에 대해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의 일부이다.

 

- 스코트 ---p.26

 

 

 

새는 2차원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발전의 정도에 따라 3차원,4차원,5차원 또는 그 이상의 고차원과 관계를 갖습니다. 새로운 차원은 저마다 새로운 의사소통, 새로운 계약, 새로운 의무로 인도합니다. 높은 차원에 속해 있는 사람일수록 삶을 건설하는 과제에서 자기가 맡은 부분을 해내는데 더 큰 책임을 집니다. 당신은 '새'처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당신의 다른 평면,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발전단계에 걸맞는 존재로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p.109 본문중에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 p.132

 

 

 

스코트는 생활의 질을 높이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 p.132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할 것입니다. - 폴 발레리 You must live as you think. If not, sooner or later you will end by thinking as you have lived.(Paul Valery)

 

--- p.179

 

 

 

나는 그이에게 중얼거렸다.”여보,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몸이 가도록 두어요.썰물처럼 가세요. 같이 흐르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구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사랑이 당신과 함께 가요.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잘 있어요.”

 

- p.229

 

 

 

사랑하는 스코트, 우리는 50년 동안 사랑과 동지애 속에서 같이 살아왔습니다. 결혼 생활은 결코 그 사랑의 본질이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관심과 목표와 행동이 일치하는 두 사람으로서 함께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면서 또한 함께 해온 많은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지적이고 훈련된 당신의 소양은 나보다 훨씬 위였고, 기술은 더 뛰어났으며, 경험도 더 넓었지만, 우리는 만나서 당신이 나의 부족한 능력을 뛰어넘도록 이끌어준 이해와 협력의 바탕위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비로운 작용으로 평등하게 되었고, 우리로 하나의 삶을 살았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영원히 당신에게 최상의 찬사를 보냅니다.

 

-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