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결심하고 난 뒤 진행되었던 검사 결과가 취합되었다.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의 전신상태가 수술을 견디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심장 초음파는 할아버지의 심기능이 충분히 안정적임을 보여주었고, 폐 기능 검사 또한, 수술을 진행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할아버지의 방광에 자리 잡고 있던 육종의 크기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고, 간에서 새롭게 생겨난 병변들이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조직검사를 시행하기에는 그 크기가 작아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전이를 확신할만한 근거는 뚜렷이 없었지만, 정황상 육종의 간 전이를 의심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수술을 위한 준비가 끝났고, 수술이 내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이선생 왔어?"
"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요즘 걱정이 많이 되셔서 그러세요?"
"막상 수술이 내일로 다가오니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서 그래......"
"긴장이 되시는거에요? 아니면 걱정이 되시는 거예요?"
"긴장보다는 걱정이지. 이선생 말대로, 조금 일찍 수술하겠다고 했으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CT 결과 들으셨어요? 아직은 크기가 작아서 전이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워요. 일단 내일 수술 잘 마무리하는데 집중을 하세요."
"말이 쉽지. 그게 잘 안되는 거 이선생이 더 잘 알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에 통 잠이 안 와"
"잘 되실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내일부터는 제가 담당의예요. 저하고 같이 이겨내 봐요. 하실 수 있어요."
"그려. 이선생. 고마워."
"오늘은 일단 푹 주무시고, 내일 수술을 준비하셔요. 분명히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근심 가득한 얼굴의 할아버지를 두고 병실을 나왔다. 3개월 전 할아버지가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말씀하신 그때, 지나갔던 병동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문득, 그때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할아버지에게 더욱 강하게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였다.
'그때 수술을 받게 했다면, 지금 보다는 상황이 좋았겠지?'
수술이 내일로 다가왔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나와 마주하게 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많은 감정들이 스쳐갔다. 날이 저물어 병실의 불이 꺼지면, 할아버지 역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울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수술 전 날 밤이 지난 결정에 대한 후회로 가득하지 않기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짙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전공의 일기. > 나의 중절모 할아버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공의 일기. 5-23화 6시간 (0) | 2020.10.19 |
---|---|
전공의 일기. 5-22화 수술날 아침. (2) | 2020.10.14 |
전공의 일기. 5-20 우려 (0) | 2020.10.11 |
전공의 일기. 5-19화 자식이 뭔지 (0) | 2020.10.08 |
전공의 일기. 5-18 익숙한 목소리 (0) | 2020.10.07 |